자유로운 새들의 천국이자, 자유를 빼앗긴 수용자의 지옥이었던 유부도 탐조기

탐조인 1명, 사회탐구인 1명. 총 2인 조합으로 급작스럽게 떠난 탐조 후기.

수심원 사건

예정에 없던 탐조로 동네 친구와의 저녁 약속을 미뤘다. 새를 보러 간다는 데 한 번 놀라고, 그걸 남자랑 둘이 간다는 데 또 한 번 놀라더라.

야생 조류는 늘 인간과 거리를 두려 하니, 탐조는 자연스레 외진 곳을 소규모로 다니게 된다. 탐조인 만철 님과 함께라면 어느 섬이든 상관없다. 백수인 나는 무조건 오케이 하며 처음 들어보는 섬으로 갈 짐을 꾸렸다.

여행 전 필수 체크리스트, 나무위키 검색에 들어갔다. 그런데 섬에 특이한 항목이 있다. ‘수심원 사건’? 7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운영된 정신요양시설이란다. 영화 <올드보이>의 사설 교도소와 신안 염전 노예가 합쳐진 듯한 곳이었다.

현재는 50가구, 80여 명의 주민이 살고, 걸어서 20분이면 한 바퀴 도는 이 작은 섬에 한때 100명이 넘는 수용자가 갇혀 염전 노예 생활을 했고, 그게 1997년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수심원 사건 나무위키

유부도는 도요새 천국이다. 전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수백 마리 남짓만 남은 희귀한 새들이 머물다 간다. 이 철새들은 위로는 시베리아, 아래로는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이동한다. 이동의 자유 측면에서 보면 현대의 부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호사 아닐까.

그에 비해 수용자들은 수용시설과 1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염전만 오가며 20년을 반복했다. 같은 섬 안에서 얼마나 대비되는가.

90년대 말 시설이 폐쇄된 이후 20여 년이 지났다. 우리가 묵은 민박에서 1분 거리의 수심원 건물은 그때 그 시간에 멈춰 있다. 수용자들이 아마 목숨 걸고 허물고 싶었을 벽, 밀어젖히고 싶었을 철문은 이제 두어 번 몸통으로 부딪히면 후두둑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고 초라하게 서 있다.

도요가 내려앉는 이곳에, 떠나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수용자들은 탈출을 위해 수영하거나 스티로폼 덩어리에 몸을 실었다. 육지까지 닿으면 다행이고, 도중에 죽어 발견되면 간조 때만 길이 열리는 외딴 섬에 버렸다고 한다.

요즘 인터넷에서 개나 고양이 사진을 보며 ‘무해한 생물’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반대로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얼마나 유해할 수 있을까. 인간은 희망이자 절망이다. 그래서 인간사에 지치면, 무해한 새를 멀찍이 바라보는 탐조라는 취미가 생긴 게 아닐까.

수심원 사건에서 가장 아픈 이야기는 시설 폐쇄 이후 수용자들의 삶을 추적한 부분이다. 다른 납치 감금 시설과 달리, 이곳은 가족이 강제 감금을 신청한 곳이다. 수용자들은 돌아갈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가족에게 버림받거나 배신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추적이 된 수용자들은 대개 부랑자, 노숙자로 살다가 생을 일찍 마감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부도에 내려앉은 도요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라도 가야 할 둥지가 있는데, 수용자는 자유가 주어져도 갈 곳이 없을 수 있다. 자유는 떠다닐 수 있는 권리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에 나를 기다려주는 이들과 정착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하는 건 아닐까.

우측이 폐쇄된 수심원 벽, 좌측이 섬 주민의 집. 수심원이 운영되던 20년부터 40년전 유부도 주민들도 공범일까? 아니, 법률적 용어로는 미필적 고의 정도 아닐까.

구조 안에 들어간 사람은 구조의 부패를 알기 어렵다. 다른 섬과 육지 사람들처럼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촌락의 주민이었을 것.

나 개인의 의식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구조에 나를 놓을 것인가가 더 중요할지도.

유부도 둘러보기

유부도는 물리적 거리는 전북 군산과 가까운데, 행정구역 상으로는 충남 서천군이다. 아마 지역민들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은 충청도 보다는 전라도가 아닐까 싶다.

유부도에 들어가는 정기 여객선이 없어 항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임시 항 같은 곳에서 고깃배를 알아서 빌려 들어가야 한다. 근데 이 배를 타는 곳이 군산이다. 주민들은 이래저래 군산을 기점으로 생활해 왔을 것.

박진감 넘치는 이 곳이 바로 선착장이다.

섬에 들어가 보니 집집마다 경운기 한 대와 자전거 한 대씩 있다. 갯벌에 들어가 조개류 채취하는 작업을 위해 경운기는 필수. 섬이 좁다보니 자동차는 효용이 떨어져 자전거를 주로 쓰는 듯 하다.

섬이 작은것치곤 여러모로 구조가 특이하다. 먼저 군산의 공단과 산업용 부두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그 방파제가 무지 길다. 지도상에서 재보니 방파제 길이가 7킬로미터. 유부도 본 섬의 해안가를 제외한 길이가 1.2킬로미터니까. DLC가 본품보다 더 큰 셈.

그 외에 북으로도 간조 때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섬이 세 개다. 이 중 하나에 수심원 재소자의 사체를 유기하지 않았을까.

그 섬으로 강력히 의심되는 곳에 갔더니, 숨어있던 고라니가 펄쩍 뛰며 등장. 갯벌을 가로지르며 본섬으로 도망가더라. 애초에 고라니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됐는지 의문. 그래도 육지랑 배로 5분 정도 거리인데. 썰물때 헤엄을 쳐야하는데 그럴 유인이 있었을지.

내가 가 본 그 어떤 섬에도 종교시설은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게 기독교 교회, 그 다음이 천주교 성당. 예상 외로 섬에는 절이 가장 적었던 듯.

마을 회관 앞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던 백구. 섬에서 백구 몇 마리, 고양이 몇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민박집 샴 고양이

어찌보면 진정한 의미의 텃밭은 이런 구성이어야지 않을까. 딱딱 구획 정리해서,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먹을 만큼만 키운다.

섬 곳곳에 빈집들이 보인다. 육지에서는 싸게 거래된다면 허물고 뭔가 해볼법하지만, 섬에서는 허물고 폐기물을 반출하는 것조차 육지보다 훨씬 더 많은 노고가 든다.

여기도 해변가 모래 유실이 심각한 듯. 나무로 둑을 만들어 두긴 했는데. 매일 만조때 흙을 가져가는, 자연이랑 깃발 쓰러뜨리기 게임을 하는 모양새다.

여기서 흔한 것이 다른 곳에선 귀한 것이 된다. 한국에선 너무 흔해서 간척지로 매워왔지만. 서해 갯벌은 세계에선 귀한 것이란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물리적인 땅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국토의 70%가 산이라도 관계없다. 이미 30% 평지에도 빈집이 넘쳐난다.

너무 늦지 않게 경제가 발전해서, 이제는 다시 갯벌을 자연 그대로 활용하는게 가치가 더 커졌을 것.

분명 복원사업을 하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엉성하게 하다만 것처럼 복원이 됐다. 역시 복원의 달인은 그냥 자연인가.

어쨌건 제목이 탐조기이므로. 새 사진 한 장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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