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아재,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이었나_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원제는 ‘인기 없는(언파퓰러) 에세이’ 인데, 제목을 바꿔서 출판사에서 냈다.

1.

제목에서는 러셀 아재 욕했지만. 실은 내 문제라는 걸 안다.

한 시대를 풍미했거나, 여러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사람은.

내 얕고 좁은 취향과 별개로 분명 대단한 면이 있다. 다만 지금의 내게 그걸 알아챌 식견이 없을 뿐,

2.

트레바리 얼추 15번 정도 했으니, 60권의 책을 읽었을텐데.

키건 씨의 ‘이토록 사소한 것들’ 이후 최대 난적이다.

키건 아재는 너무 다행이 책이 얇아서. 시신경이 물리적으로 활자를 훑는 행위는 금방 끝냈다.

러셀 아재 책은 회심의 에세이 모음집이라 분량도 적진 않다.

고로 고통도 짧지 않다.

3.

작년에 니체 작품 번역본을 본 적이 있는데.

장을 넒길때마다 모호한 부분이 나와서, 해당 장을 휴대폰으로 찍어 GPT한테 해설해 달라고 했더니.

맙소사. 내가 쉽게 이해하려면 니체 책 1장에 해설은 3장 정도 분량이 필요하더라고.

이때 깨달았다.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내가 뜬금없이 스페인 원어 소설을 읽지 않잖아. 적어도 단어집이나 해설서를 끼고 앉지.

철학도 마찬가지.

니체건 러셀이건. 이 거장들이 아무리 호의적으로 쉽게 쓴다 해도 시대의 맥락, 철학사의 맥락을 모르는 채로 보면.

지금 내가 스페인 소설 읽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걸.

생각보다 나의 수준을 더 낮춰서 봐야 한다.

두 바퀴로 달리지 못하면 과감하게 보조바퀴를 붙여야 한다.

니체 아재 뒤에 러셀 아재를 통해 새삼 보조바퀴 없는 당혹감을 만날 줄이야.

4.

검은 것이 글자, 흰것이 종이. 

하지만 시신경에서 그대로 반사되지 않고 아주 드문드문 눈에 들어온 ‘글귀’도 있으니.

기록으로 남겨둔다.

——

1920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긴 대화를 나눈 레닌은 표면적으로는 글래드스턴과 매우 달랐지만, 시대와 장소, 신념의 차이를 감안하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많았다.

——

러셀은 미친 금수저 가문이었다.

당시 책을 낸다는 거 자체가 대단하고, 그 책이 여전히 읽히는 사람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긴 하지만.

역사책에 나오는 사람 다 만나고 다닌 아저씨였어.

——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글래드스턴 씨가 한 술 취한 남자를 상대했던 이야기는 그의 당당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반대 정당 소속이었던 술 취한 남자는 글래드스턴 씨가 말을 할 때마다 자꾸 끼어들었다. 마침내 글래드스턴 씨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아니고 제 발언을 여러 번 방해한 신사 분께 부탁드립니다. 만약 제가 당신 자리에 있고 당신이 제 자리에 있다면 제가 주저 없이 당신에게 베풀 매우 예의 바른 태도를 저에게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술 취한 남자는 충격을 받아 그날 저녁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이게 부천역 비제이들한테는 안 먹힐테니. 상대를 잘 보고 해야겠지. 

저게 진짜 낭만의 시대인가, 아니면 야차룰로 주먹다짐 해서 깨끗이 결론내는 게 낭만의 시대인가.

——–

변화와 진보는 다른 것이다. ‘변화’는 과학적이고, ‘진보’는 윤리적이다. 변화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진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아싸! 한 문장 건졌다.

변화는 가치중립적이고 진보는 가치판단이 들어간 것. 이게 러셀 아재의 용어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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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아재,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이었나_생각을 잃어버린 사회”에 대한 1개의 생각

  1. 1.
    왜 진도에 맞지 않는 수학책은 언강생심 펼치지 않으면서, 배경지식 없는 철학책이나 사회과학 책은 쉽사리 도전하는가.

    중학교 시절부터 수학을 반쯤 포기했다가 다잡기를 반복했는데. 고등학교 말미에 미적분을 배우며 놀랐다. 아! 내가 이걸 이해하려고 그 긴 시간 산수 익힘책부터 고교수학까지 밟아온 거구나. 미친 12년 빌드업이네. 미적분 하이가 왔달까.

    근데 이 미적분을 이해하기 위해 극한을 알아야 하고 더 이전에는 사칙연산을 알아야 한다. 수학1도 떼기 전에 수학2를 건드리지도 않는게 보통인데. 왜 철학책은 상대적으로 쉽게 열게 되나.

    그건 바로, 활자를 읽을 수 있는 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걸로 오해하기 때문.

    영어도 일본어도 처음 배울때 다 똑같았다. 교과서 속 한 쪽짜리 대화를 이해하려면 문법과 단어 설명을 서너배 분량으로 읽고 익혀야 한다.

    러셀 아재의 책도 마찬가지. 이를 테면. 100년 전 천재인 러셀 아재도 지금 레딧에 가면 온갖 밈이 메타포로 쓰이는 게시글의 10분의 1도 이해 못 할 것. 폰트는 다 읽겠지만.

    2.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보다 더 급진적으로, ‘누가 맞는게 뭐 중요한가’로 간다.

    학문 세계에서는 사실관계가 무척 중요하지. 근데 현실세계 범인인 내겐 사실관계는 사실 별로 안 중요하더라.

    나같은 갑납을녀에게 정말 중요한 사실은 고작 두어개. 통장비번과 현관비번 정도.

    그 외 절대다수 논쟁은 사실관계보다, 상대 감정과 우리 관계가 실은 훨씬 더 중요하다.

    업무에서도 뭐가 정답일지 알 수 없는 시안 A,b,c,z 보다. 상사와 후임의 심기경호가 훨씬 중요하다.

    나의 안위 뿐 아니라, 실제 ‘일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한국 사회에선 대개 맘 상하면 될 일도 안 되기 때문.

    3.
    AI의 한계를 지적하는 양대 논리.

    1. AI도 완벽하지 않다. 2. 정답이 있는 문제는 잘 풀지만 단일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에는 약하다.

    원론적이고 학술적으론 맞는 말인데. 이 역시 현실세계에서 도구로 쓰기엔 큰 제약이 아니다.

    범용 도구로서 AI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비교우위만 있으면 된다. 즉, 다른 툴이나 인간보다 나으면 된다.

    AI가 쓰는 글은 왠지 위화감 든다고? AI에게 세익스피어 필력을 원한다면 맞는 말인데. 뭔말하는지 모를 후임의 주간보고서 보단 낫지 않나?

    정답이 있는 문제는 물론이고, 열린 문제에서 최적값을 찾는 세상의 대부분 문제도 결국 AI가 앞선다.

    인간의 판단도 개별 사건에서 동일 패턴을 찾아내며 발전하는 건데. 패턴 학습량에서 AI를 따라잡을 순 없다. 유일한 하나의 정답을 못찾더라도, 적어도 인류 대부분의 휴먼보다는 이미 더 최적값을 잘 찾는다.

    4.
    AI는 우리의 사고를 깊어지게 할까? 감히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문자 같은 기록 기술에 의존하면 스스로 기억하고 사유하는 훈련이 약해지고, 겉으로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지혜는 얕아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사고를 키우기 위해 많이 쓰고 많이 읽으라는 말을 지지리 들어왔던 우리 세대가 보기엔 신선한 충격이다. 문자가 없으면 어떻게 쓰고 읽나?

    개인이 경험하는 사건의 확장이 곧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단기간에는.

    하지만 결국 양이 쌓이면 질적 전환을 이룬다. SNS와 AI를 통해 압도적인 사건의 확장이 결국은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질 것.

    물론, 모든 휴먼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인류가 문자를 쓴 지 수천년이 넘었는데 현대에도 문맹은 많잖아.

    다 양보해서. 정말 사고를 깊어지게 하는 건 아니라 치자. 자동차와 비행기가 나와서 인류의 평균 다리근력과 심폐지구력을 떨어뜨렸을 것. 그렇다고 인류가 운송수단을 보이콧 하나? 분명 더 큰 무언가를 얻을 것.

    5.
    확신은 위험하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물리적으로 위험하다.

    여의도 주식쟁이 모임에 간혹 꼽사리 껴보면. 확신에 찬 투자를 하다 죽은 사람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듣는다. 시장에서 퇴출됐단 소리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생을 마감했단 이야기.

    앞에 아무리 큰수를 곱해도 마지막에 0이 놓이면 무위로 돌아간다. 아무리 판돈이 커도 러시안룰렛은 하면 안 된다.

    근데, 현실에선 자기가 앉은 판을 러시안 룰렛이라 인지하는 사람은 없지. 도파민 터지는 한게임 포커라 생각하지. 오링나도 다음날 충전되는.

    6.
    ‘인간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무경계 독서모임의 뮤즈 가라사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은 너무 느리게 변하고, 기술은 너무 빨리 변해 서로 사맛디 아니하다.

    AI시대 달라지는 것과 달라지지 않는 것은 뭘까. 거의 모든 것은 달라지고, 극소수의 것만 달라지지 않는다.

    생존과 번식, 이를 위한 쾌의 선호. 역시 인기있는 인간이 살아남고. 최소한 살아남으려면 재수없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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