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라는 적’, 이 바닥 겸손해야 한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한 개인주의 서방사회에서나 강조해야 할 책’이라 생각했다. 허나 우리 사회도 이미 서구화 된 탓인지 어디 하나 반박할 구석이 잘 안 보인다. ‘이 바닥 겸손해야 한다’는 한국 영화 명대사와 함께 오래도록 곱씹기만 할 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에고는 무엇일까?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 이 책에서는 이것을 에고의 정의로 사용할 것이다.



=> 용어 정의가 중요하다. 여기서 주구장창 까이는 에고는 자의식 과잉상태를 말한다. 경상도식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낸데!





작가이자 블로거인 에밀리 굴드는 2년 동안 소설을 내기 위해 애를 쓰면서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그녀는 엄청난 돈을 벌고 성공하긴 했지만 거기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인터넷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그게 이유였다.


……즉, 그녀는 소설 쓰기에 집중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했다.


……실제로 글을 쓰는 것보다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예술과 문학 등에 관련된 흥미로운 일들을 하는 것이 훨씬 쉽다. 


……집필은 다른 많은 창의적인 행위와 마찬가지로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가만히 자기 자신에, 사물에 몰입해야 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가 수행하는 많은 가치로운 일들은 그것이 새로운 회사를 세우는 것이든 혹은 어떤 기술을 숙달하는 것이든 간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까다롭고 어렵다.



=> 인터넷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 이게 내가 영어, 살사, 글쓰기 등등에 능통하지 않은 이유다. 적어도 이유의 상당 비중을 차지할 거다.





“위대한 열정은 희망이 없는 만성 질병이다.” 괴테가 했던 말이다. 신중하고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은 흔들림이나 아픔을 넘어서서 제 갈 길을 잘 헤쳐나간다. 이들은 열정으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대신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이들을 활용한다.




열정은 아마추어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마음이 쓰이거나 되고 싶은 어떤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해야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분명해 해야 한다.



=> 의도, 열정, 진심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선한 의도, 원대한 열정, 순수한 진심을 발현할 빠듯한 계획을 세우고 지루한 실천을 반복하자.


=> ‘연애를 시작하려 할 때, 진심만큼 쓸모 없는게 없다.’ 원포인트 연애레슨의 최욱 작가의 말. 여기서의 진심이 곧 열정 덩어리다. 열정 만으로는 안 된다. 오히려 뜨겁게 데이기 십상이다. 연애에도 아마추어와 프로가 있다면, 프로는 머리로 다가선 후에야 가슴으로 안아줄 것.



한밤중에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장문의 이메일을 써 보내거나 누군가를 놀라게 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일, 단 한 번의 승부에 가진 돈을 몽땅 털어 넣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흥분되고 흥미롭지 않은가? 이에 비해 같은 훈련을 반복하거나 꽉 짜여진 회의나 출장, 완벽하게 정리된 스프레드시트, 정교하게 짜인 시스템과 같은 것들은 그디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앞의 것들은 당신을 흥분시키지만 무언가를 실제적으로 이루어내는 것은 그 뒤에 언급한 것들이다.



=> 영화 같은 장면은, 120분 내에 우겨 넣으려다 보니 일상이 기적처럼 표현된 것 뿐. 현실 세계는 지난한 수년에서 수십년의 응축된 시간이 필요할 것.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나타난다. 어떤 시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러 단어들을 이어서 자기의 경험을 효과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 때까지 직접 써보아야 한다. 시인이자 사상가인 폴 발레리도 시인이 시적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그저 개인적인 차원의 일일 뿐이고 시인이 하는 일은 그 시적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서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무언가에 성공하고 나면 실제로 자기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척 허풍을 떨기 쉽다. 어떤 대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통달은 유동적이고 연속적인 일련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고, 더 알 필요도 없다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자신의 지식을 확신하고 일종의 안전지대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그런 태도가 가장 위험하고 문제를 야기시킨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의 약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잘못된 경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나는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라고 했던 말 속에 숨겨진 특별한 겸손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 겸손함을 갖추기 위해 애써야 한다.





당신의 재능이 예전보다 나아지지 않았음을, 심지어 퇴보했음을 정확히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힘들지만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이 공부하고 있는 분야의 정점에 설 수 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악덕이다. 그것은 개선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객관적이고 냉철한 자기 평가를 통해 그런 악덕을 경계해야 한다.



“자기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우기란 불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한 말이다. 만약 당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결코 그것을 배울 수 없다.



학생이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선생이 나타난다는 옛말이 있다.



=>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울 기회가 사라져버린다.




2천 4백년 전에 플라톤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뜯어먹고 사는’ 인간 유형에 대해 말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이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실제로 필요한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힘든 과정을 회피하는 것이다.”



=> 플라톤 아저씨는 이걸 이미 2,400년 전에 알고 있었구나. 업무 시간에 날 지켜봤나?





언제 어디에서든 ‘절대 뽐내지 마라’



=> ‘이 책에서 건질 한 줄’ 유력 후보! 뽐낼 실력이 있다면 뽐내지 않아도 알아줄 것이고, 실력이 없다면 들통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것.




“신이 파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때 신은 그에게 유망한 인재라고 말한다.” 비평가인 시릴 코널리가 한 말이다. 2천 5백년 전에도 고대 그리스 시인 테오그니스는 자기 친구에게 똑같은 내용을 편지에 썼다. “신이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그에게 맨 먼저 주는 것이 자만심이라네.”



끊임없이 비판을 수용하고 만족하지 마라. 인생의 적절한 경로를 계속 찾아라. 자만심은 이렇게 하고자 하는 인식과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우리 안의 예민함, 피해망상,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일깨운다.



자기가 자만심에 사로잡혀 있다고 느낄 때에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더 겸손한 사람이라면 볼 수 있을 텐데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정신없이 날뛰고 환상에 사로잡혀 외면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 오만하지 말 것. 안으론 배울 기회가 사라지고, 밖으론 적이 생긴다. 둘 다 잠깐 뿌듯함의 대가로는 너무 큰일이다.





자기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을 것, 자기보다 아래에 있거나 위에 있는 사람을 경멸하지 않을 것, 특별대우를 바라지 말 것, 분노하고 싸우거나 우쭐대거나 군림하거나 생색내거나 자기 스스로를 엄청나게 중요한 인물로 인식하지 말 것, 바로 이런 것을 추구하자는 말이다. 냉철함은 우리의 성공에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추와 같다.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숨어서 살라는 옛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번듯하게 성공했으면서도 수수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위적인 것을 꺼리고 또 평범한 옷을 입는다.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당신이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에 드러나려 애쓰지 않고, 그렇기에 냉철함을 잃지 않는다. 바로 그 냉철함이 그들이 자기 일을 성공적으로 해나가는 힘이다.



=> 갑자기 성공하거나 영웅적인 일을 해서 매스컴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경우를 간혹 상상(실은 공상)해 본다. 그 때의 멘트나 대응책은 항상 같다. ‘조용히, 평온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죄송하지만 인터뷰를 사절합니다.’ 



좀 더 부연하자면, 미디어를 공부했던 사람이니 그 속성을 조금이나마 아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눈이 멀 수 밖에 없다. 나 스스로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그런 급작스런 변화는 고사해야 한다. 스스로 그렇게 되뇌인다. 마치 복권 당첨되면 어떻게 할까를 시뮬레이션 하는 것과 같은 놀이랄까.




축구 감독인 토니 아담스가 이것을 멋진 말로 잘 표현했다. “셔츠 앞에 적힌 팀의 이름을 위해서 경기를 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 셔츠 뒤에 적힌 당신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를 유망한 상품으로 발전시키거나 하는 일은 엉망진창의 연속이다. 이런 과정을 하나의 깔끔한 이야기로 압축하는 일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절대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명쾌한 허구를 만들어내는 일일 뿐이다.


……목표를 이뤘을 때는 모든 것이 자기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척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거기에 장엄한 대서사라는 것은 없다. 그와 같은 성공이 일어났을 때 당신은 우연히 거기에 있었을 뿐이다.



제프 베조스도 이런 거짓말의 유혹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다. 그는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키우는 동안에 어떤 문제에 대해서 명쾌한 해법이 떠올랐던, 이른바 아하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 대단한 성공 비법과 노하우가 있다며 접근하는 자를 조심해야 한다. 그런 건 고교시절 수학의 정석으로 족하다.





지금까지 당신이 무엇을 이루었든 간에 앞으로도 여전히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 만일 지금 당신이 배우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다만 시작하는 학생처럼 배우는 자세를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서, 그리고 모든 사물과 상황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우리는 절대로 배움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명백하고 간단하다. 당신이 잘 모르는 주제의 책을 집어 들고 읽어라. 당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과 자리를 함께 해라. 그때의 그 불편한 감정, 당신 내면 깊숙이 가정하고 있던 생각들이 도전받을 때 느끼는 방어적인 감정들에 의도적으로 당신을 노출시켜라.



=> 불편한 감정에 의도적으로 몰아넣기. 최근 내 생활의 새로운 화두다. 너무너무 가기 싫은 월요일 저녁 수영수업 같은 거랄까. 그 너무너무 싫은 일이 실은 내게 좋은 일이란 걸 잘 안다. 그래서 그 너무너무 싫은 일을 해 내고, 수업 후 샤워장에서 나올때면 얼마나 뿌듯한지. 내가 너무너무 하루만치 성장한 느낌이랄까.



책 관련 정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182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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