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을 좋아하는 너를 굳이 데리고 간 양식집.
아니, 카페테리아 풍의 그 집 요리를 정말 서양 사람들이 주로 먹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네게 새로 생긴 그 집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후식으로 나오는 미치도록 달달한 머시멜로우 든 코코아도 마시고 싶었고.
넌 창가가 보이는 안쪽 자리에 앉고 싶어했고 처음엔 네 뜻대로 됐지.
하지만 네가 화장실 갔다 온 사이 물컵이랑 싹 바꿔 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응, 나도 창 밖 풍경이 보이는 자리에 앉고 싶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너는 무슨 이런 경우가 있냐 싶었지만 다시 바꿔 달라고 헌법소원을 내진 않았다.
그 날의 일이, 아무것도 아닌 우리 사이에, 역시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겠지만…
성탄절 즈음해서 다시 생각나면, 길에 쓰러진 아저씨를 지나친 것 보다 몇 배는 괴롭다.
‘크리스마스에 뭐 하냐’고 묻던 네 표정과
창 밖이 보이는 자리를 선점해 상대 시선을 다른 곳에 뺏기지 않도록 하라는 되먹지 않은 조언이 생각나…
사실, 성탄절은 너와 보내고 싶었고,
나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주더라도 자리를 양보함이 백번 옳았다.
누가 이십대를 후회없이 살았다 할 텐가.
뒤늦은 생채기로 특급품이 되어 가는 비자 바둑판이다, 내 지난 날은
머릿카락 같은 상처가 이리저리 흩어졌다,
그게 아물어 바둑판 구실을 제대로 하는 그런 날이 올테다.
그 위에 알까기를 하며 놀아도 좋고 김치며 라면이며 얹어 먹는 밥상이 되어도 좋고,
햇볕 쬘 때면 든든한 간이 의자로도 좋겠다.
너와 나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에서 또 한수 배운다.
연못남 폴더의 글 대부분은 이런 전개를 보인다.
궁상 맞은 과거를 회상하다가 딱히 개연성은 없지만 불특정한(흔히 ‘곧’이나 ‘언젠가’로 표현되는) 시점부터는 좋아질 거란 막연한 희망과 의지를 보인다.
이런 식으로 드라마 각본을 쓴다면 허접한 삼류 스토리라인 소리를 듣겠지만, 그런 드라마를 시청률 20~30%로 만들어 주는 국민들과 함께 소극적이나마 응원해 보련다.
이거 2탄은 언제 나옴?
인간이 좀 더 나아져야 새로운 플롯으로 2탄이 나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