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_용두사미, 8부까지만 용

바둑계를 인터뷰한 르포 형식의 8부까지는 생생하다. 곱씹어볼 말이 너무 많다.

그러다 작가의 생각을 정리하는 9부와 10부에 가서는 이게 뭔가 싶다. 작가의 아래 말이 9부와 10부를 압축해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다음 시대의 탈 것이 전기차가 아니라 자전거가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AI로 완전히 뒤집힌 바둑계를 치열하게 훑던 눈이 후반부 가서는 ‘나는 자연인’ 수준의 에세이가 되어 버리네.

아니, 이런 비판은 내가 이미 AI에 대한 긍정 편향이 있기 때문일지도.

굳이 쓰고 싶은 내용은 아니지만, 9부와 10부는 작가 아내가 큰 병에 걸린 후 집필했다 하니. 컨디션이 안 좋았나 지레짐작해볼 뿐.

하지만 한국 바둑계 취재르포는 정말 생생하다. 이것만 해도 뜨내기 AI 예견 서적 10권보다 훨씬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한국 네티즌 대상 설문조사에서 95퍼센트가 이세돌 9단이 승리할 거라고 응답했다

설문조사에서 ‘독도는 한국땅이냐’ 물어도 90퍼센트 넘기 어렵다는데. 이정도면 당시 여론은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뜬다 수준으로 이세돌 승리를 믿고 있던 것. 그만큼 극명한 대비가 되는 결과였지.

배명훈 소설가는 인터뷰에서 ‘로봇 때문에 직업을 잃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로봇이 아니라) 누군가가 창작을 하는 것이다. 작가들 관점에서는 위대한 무엇인가가 중요하지 그것을 꼭 사람이 만들어야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산출물이 나오면 되지, 그걸 반드시 사람이 만들어야 할까?

예술이나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사람이 주체에서 사라지면 안 된다는 말이 자주 나오지만, 로봇청소기 때문에 청소라는 일을 빼앗긴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은 없더라.

박정상 9단은 창의성은 어떤 사람의 특성이나 기질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며, 행위에 대한 평가를 담은 표현이라고 본다.

AI에게 창의성이 있냐는 말보다, AI로 만든 산출물에 창의성이 있냐고 물어보면 너무 명확하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일반인의 눈으로 봤을 때 그렇다. 아니, 오히려 너무너무 창의적이다.

솔직히 제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소설도 되게 창의적으로 쓸 거예요. 우리가 인공지능을 제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제일 인정하는 사람들이 되었어요.

역시 당해봐야 안다. 프로기사 대상 설문이라면 95퍼센트 이상이 이세돌 승리를 확신하지 않았을까. 사실상 100퍼센트가.

2018년이 되어 바둑 AI 프로그램들이 보급되자 그렇게 공동연구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인간 기사들이 며칠 동안 토론한 것보다 인공지능이 몇 분 만에 내놓는 대답이 훨씬 뛰어난 수였다.

AI 이전에는 프로 기사가 모여 최선의 수를 찾는 ‘공동연구’가 실력 향상의 중요한 열쇠였다. 한중일 외의 주변에 고수가 없는 나라는 실력이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AI 등장 이후 실력 향상법이 달라졌다. 휴먼끼리 공동연구할 게 아니라 AI의 수를 익혀야 한다.

‘공동연구로 치열하게 지새던 밤과 이를 통한 성장’ 어쩌구하며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실력저하로 시장에서 퇴출 된다(이미 많이 됐단다).

공동연구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적이 실력 향상인데, 주객이 전도되어 공동연구 자체에 대한 향수와 애착을 갖는 기사가 있었을 테고. 이런 현상은 아마 모든 산업 분야에 동일하게 또다시 재현될 것.

이 일을(절차를, 행위를) 하는 목적이 뭔가! 각자 다시 답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명확하게 말씀드리면 알파고 이전의 책들은 모두 폐기해야 해요.

“바둑 역사를 길게는 5000년으로 보거든요. 그 5000년 동안 바둑의 패러다임은 인간 중심이었는데, 그게 끝난 거죠. 단순히 포석이 변했다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바둑을 대하는 방식, 바둑의 토양이나 문화 같은 게 송두리째 다 바뀌어 버렸어요.

알파고 이전까지 바둑을 도(道)로 봤던 관점이라든가, 입단 제도라든가, 관전 문화, 프로기사들의 삶, 아마추어 기사들의 삶 등등 바둑의 전 영역에 걸쳐서 패러다임이 바뀐 거예요.

건조하게 보면 간단하다.

교양 과학서를 보려는데. 2025년 출간된 책과 1025년 출간된 책(이 시기 출간된 교양 과학서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중에 뭘 볼 거냐.

개정판이 나왔으니 오히려 혼선을 주는 과거 책은 폐기하는게 맞다. 최신 화학책 봐야지 연금술 봐서 어따쓰래.

처음부터 인공지능으로 바둑 공부를 한 사람은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수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제가 두는 모든 수가 나쁜 수가 돼요. 제가 생각하는 모든 수를 다 교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거예요.

이게 어떤 느낌이냐 하면 ‘아, 이런 수는 인공지능이 나쁘다고 하니까 바꾸자’ 그런 수준이 아니라, 제가 믿어왔던 모든 이론과 가치체계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에요. 포석을 포함해서 바둑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대한 판단이 바뀌었어요

전문직이거나 자기 업무 전문성에 대한 자신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AI한테 받는 충격은 크다.

실무에 AI를 도입할 때도 기존에 해당 업무를 잘하던 사람이 가장 힘들어했다. 바로 자기가 자신 있어하던 기존 방식을 부정해야 했기 때문에.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자신이 잘해내고 있다고 믿을 때 긍지를 얻는다. 나는 다른 직업에서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긍지를 잃을 사람이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계산기가 나온 이후, 뛰어난 암산 실력을 가졌다고 진지하게 직업적 긍지를 표출하는 사람은 없다. 긍지를 가질 분야와 대상이 달라지게 된 것.

(신진서9단) 거의 모든 시간을 바둑 공부에 할애하고 있어요. AI를 통해서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하루에 12시간씩 공부를 1년 정도 했는데 효과가 없었다면 그만두고 휴식도 하고 여행도 가고 그랬겠죠.

그런데 AI를 통해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AI로 실력을 연마하다 보면 100퍼센트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믿어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게 어쩌면 AI로 도달할 수 있을 ‘신선의 경지’.

세계 랭킹 1위인 사람은 자기보다 앞선 이가 없으니 어디까지 더 올라갈 수 있는지. 혹은 갈 수는 있는 건지 의문이 생길만 하다.

그에겐 AI가 말도 안 되게 거대하고 든든한 길라잡이 아닐까. 인간은 어떠한 고통도 확고한 희망이 있으면 견디며 나아갈 수 있다. 반대로 불확실성이 인간을 지쳐 포기하게 한다.

세계 랭킹 1위에게 AI는 확고한 희망이다. 마치 현세에 예정된 천국 아닐까.

이제는 진짜 열심히만 하면 얼마든지 성적을 낼 수 있다, 되게 좋은 시대다.’”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모르겠으나, AI는 많은 장벽을 허물었고 이는 많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꽤나 곧게 펴는데 기여한다.

기술 발전과 대중화는 대개 다 이렇게 작용하더라. 유튜브 채널로 공중파 3사와 대항하고, 블로그 개설로 조중동과 맞설 수 있게 된다.

‘열심히만 하면’이라는 전제가 많은 함의를 품고 있겠으나. 여튼 운동장은 좀 더 평평해졌다.

사실 한국의 전설적인 기사인 서봉수 9단은 알파고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같은 말을 했다.

“바둑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의 눈에는 승부수니 기세니 하는 애매모호한 말은 전부 가소로운 것들로 비칠 것”이라는 말이었다. “신의 눈에는 오로지 정수와 악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모든 문제를 극한으로 몰고가 단순화하면. 최선이나 최악이냐. 선이나 악이냐. 이 둘 중에 하나만 남지 않을까.

그 중간에 있는 수많은 표현과 경우의 수는 결국 극한까지 체를 치지 못한 휴먼의 변명일 뿐.

20대 후반부터 기사로서의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기본적으로 프로기사니까 좋은 성적을 내고 싶고 높은 곳까지 가는 게 목표겠죠. 그런데 저는 언젠가부터 제 목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바둑을 두는 것이라고 대답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AI한테는 실력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제 저보다 강한 기사들도 많죠. 그래도 제 바둑을 보는 분들이 ‘이 사람은 뭔가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바둑을 두는구나,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바둑을 두고 싶다는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 같아요.”

AI가 등장하면서 ‘최선의 한 수’ 같은 고도의 기술은 인간에게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제 바둑판 소비자가 원하는 건 명확해졌다. 인간 대결에서 오는 서사, 거기서 오는 즐거움을 파는 엔터 산업. 스포츠 콘텐츠라고 표현해도 좋겠네.

신기술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예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한 스트리밍 기술 때문에 많은 영화감독이 극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체험이 무엇인지, 영화와 드라마는 무엇이 다른지 고민 중이다(반대편에서는 OTT가 마련한 극장용 영화와 드라마의 중간 지대에서 새로운 예술적 기회들이 생겨났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인상주의의 등장일 것이다. 미술사에서 인상주의는 사진 기술에 대한 미술가들의 대응이었다(카메라가 인상주의를 낳은 유일무이한 근원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사진에 대항(혹은 대응)해 인상주의가 나왔듯, 모든 업계는 AI에 대항해 뭔가를 해야한다. 결국 어떤 사회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냐. 여기에 AI가 침투하는 모든 산업 종사자는 답해야 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 추가

1913년에 독일 수학자 에른스트 체르멜로가 발표한 정리가 있다. 체스, 장기, 오목, 오셀로, 틱택토, 그리고 바둑 같은 보드게임에서 어느 한 선수에게는 ‘절대 지지 않을 전략’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필승법, 아니면 적어도 무승부를 보장하는 공식이 있다는 것이다.

저 게임들을 수학 용어로는 ‘2인 유한 턴제 확정 완전정보 게임’이라고 하는데, 두 사람이 번갈아 한 수씩 두고, 상대의 수를 볼 수 있고, 운이 개입하지 않고, 게임에서 펼쳐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유한하다는 의미다.

‘체르멜로 정리’를 증명하기는 간단하다. A와 B가 바둑을 둘 때 A에게 지지 않을 전략이 있다면 이 정리는 바로 성립한다. A에게 그런 전략이 없다면 A가 어떤 수를 두더라도 B에게 질 수 있다는 얘기다. 즉, B에게 이길 전략이 있다는 뜻이 된다. 증명 끝.

물론 그 전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인공지능이 ‘절대로 지지 않을 전략’을 알고 있다면 인공지능끼리 대국을 벌였을 때 흑이 항상 이기거나, 반대로 백이 항상 이기거나, 혹은 늘 무승부가 나야 한다. 인공지능이 필승 전략을 안다면 인공지능 간의 대국은 늘 똑같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굉장히 바둑을 잘 둘 뿐, 바둑의 정답을 아는 경지는 아니다. 다시 증명 끝.

바둑도 완벽한 신의 한 수, 아니 신의 한 대국을 구현하지는 못했다. 다만 인간에 비해서는 너무 압도적으로 잘 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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