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모험, 영월 고씨동물

공포영화, 재난영화 시청의 즐거움은 보장된 안전에서 온다고 했던가. 스크린 속 주인공은 죽을 고생을 하지만, 시청자는 그 장면을 안전한 영화관 의자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니. 그 대비에서 오는 안도감이랄까, 적절히 조정된 스릴이랄까.

영월 고씨동굴 탐험도 마찬가지 재미가 있지 않나 싶다. 석회 동굴은 수 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다는데, 인간이 이 동굴을 발견해 각자 방식으로 탐사하다 적지 않은 인원이 못 빠져 나오지 않았을까?

전체 3킬로 넘는 경로 중 관람용으로 600미터 정도가 개방되어 있는데. 이 길도 곳곳에 표지판과 표식, 조명, 철로 된 골조 발판이 없었다면 엄청 어려운 여정이었을 거다.

조명이 희미해지는 구간을 만나자 퍼뜩 드는 생각. 만약 이 길이 곧 끝난다는 확신이 없다면. 이게 실제 탐사라면 얼마나 두려울까. 같은 길을 걸어도, 한 사람은 자기 위치와 남은 거리를 알 수 있고 다른 한 사람을 마냥 출구를 기대하며 하염없이 걸어야 한다면. 그 둘의 심리적 + 육체적 부담 차이는 어마어마할거다.

고전을 보면 길을 잃고 헤매다 인가나 오아시스를 코앞에 두고 갈증으로 쓰러져 죽는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다. 오아시스 위치를 알고 있다면 절대 코앞에서 쓰러지진 않았을 것.

종착지를 아는 데도, 고씨동굴 탐험 코스는 생각보다 길고 어려웠다. 안내원이 왕복 한시간 정도 걸린다 했는데. 표지판 내용을 한번씩 읽어보며 들어가고, 돌아올 때는 꽤나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50여분, 거의 한시간이 걸렸다. 어르신들 모시고 간다면 넉넉잡아 한시간 반은 잡아야 할 듯.

이건 고씨동굴 들어가는 다리에서 찍은 풍경. 다리 놓기 전에는 비록 짧은 거리지만 배를 타고 건너야했다고 한다. 강에는 플라이 낚시를 하는 분들이 꽤 있다. 캠핑카도 눈에 보이고. 넓직한 주차장에 풍부한 수량. 캠핑에 적절한 장소 아닌가 싶다.

동굴 안에는 다양한 종유석이 있지만, 석회동굴하면 떠오르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라 찍어 두었다.

마이더스 왕은 만지면 무조건 황금으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있지. 근데 모든 인간도 만지면 뭐든 까맣게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있네. 일종의,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누적 데미지가 엄청 들어가야 먹히는 독 공격이랄까.

이건 고씨동굴 하나 만으로는 콘텐츠가 빈약하다 판단했는지, 인근 주차장에 조성해둔 미로공원의 조형물 중 하나다. 당최 작가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을 하기 위한 예술작품에는 관심이 없는데. 이건 잘 와닿아 좋았다.

작가의 의도는 아니겠으나. 유지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은채 낡아 버려, 어머니의 손을 표현한 조형물의 손가락 부분이 뚫려 더 이상 볕을 막아주지 못하더라. 이건 또 이대로 나이든 어머니의 손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더 이상 아들 얼굴을 제대로 가려줄 수 없는.

이건 인근 편의점 파라솔 영역 고양이들. 한국인들 인심이 후해진건지, 요즘 관광지 고양이들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공동생활 비슷하게 하는 느낌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긴 됐나벼.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이제 고양이보고 도둑이라고도 안 한다.

장소: 고씨동굴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산262

9/23 부연
동굴 내 이런저런 종유석이나 풍경에 나름의 이름을 붙여서 소개하는데. 이게 딱 민간설화 작명 시절에 멈춰있다. 예를 들어 선녀가 내려와 멱을 감았다는 선녀탕이니, 용 머리를 한 듯한 용두암이니.

어차피 석회 동굴은 수억년 전 선녀나 용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으니. 어떻게 이름 붙이건 후대에 인간이 자의적으로 붙인 이름이기는 매한가지다. 아예 지형이 BTS 데뷔무데 진형과 닮았다거나(이건 너무 싼마이네), 마치 박근혜 탄핵시위 당시 광화문 앞 촛불 물결을 닮은 폭포라거나. 이런 식의 재해석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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