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일 오후 두 시부터 대강당 앞 민주광장에서 경북대 학생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보고가 약간 길어질듯 하니 중요한 사항부터 쪼르륵~ 피라미드식 전개를 하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총학생회 교육위원장 이지훈 학우가 복현의 소리에 올린 내용입니다. 2007학년도 기성회비를 2006학년도 대비 신입생은 정원감축을 반영하여 신입생 1. 등록금 인상에 따른 학부모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하여 총액대비 5억 원을 감 – 이는 총액 대비 %가 인하되는 것으로 2학기 등록 시 고지서에 감면이 되어서 2. 2008년도 등록금 책정 기준 액은 2007년도에 감면되어 총납부한 금액으로 한 3. 2007학년도 기성회비 중 5억 원은 장학금으로 편성하되 집행방법은 학생들과 4. 2008학년도부터 총예산 소요액은 신입생과 재학생이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 5. 2007학년도 기성회 예산에 반영된 강사료 및 공공요금 중 추가로 국고 지원 6. 단과대학별 교육환경 개선사업은 학생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다. 7.(가칭) 대학발전협의회 구성을 위하여 노력한다. 새내기들과 06학번들에게는 이 성과가 어느 정도로 비춰질까요? 주변 다른 대학에 다니는 친구, 학과의 고학번 선배에게 물어보세요. 직접 환불과 차등 납부제 폐지는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닙니다. 투쟁 결과의 성과물에 대한 대소 평가는 각자의 몫이므로 여기서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학생총회 현장의 후기입니다. 학생의 최고 의결기구인 학생총회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4000명의 학우가 모여야 합니다. 구성원 160명의 일개 학과 총회도 성사가 쉽지 않은데 2만 명에 육박하는 대학사회에서 4천명이 동일한 시/공간에 위치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2시부터 시작해서 5시 50분까지 인원을 집계했지만 결국 4천에는 모자랐습니다. 2천 5백에서 3천 2백, 3천 5백, 3천 8백까지 올라가는 집계 수치는 흥미진진했습니다. 현 대학 사회에서도 4천명이 모이는 총회가 성사가능하구나 싶었습니다. 결국 최종 실 집계로 4천에는 모자란다고 판단하여 총회가 성사되지 않았음을 통보했고 행사는 궐기대회로 바뀌었습니다. 총회 시작 시각인 두 시에 신방과 학생 4명이서 민주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사회대 깃발 한 명, 신방과 깃발 한 명, 저, 부회장 사회대 회장도, 의장도 자리에 없던 총회 현장에서 단대인원 총화를 하러 가는데 사회대 인원을 말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처음 보고 인원은 30명. 당시 단 세 개 과로 이루어진 생과대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그 후 마지막 단대 인원 총화에서 사회대 최종 82명 신방 26명, 지리 24, 심리 18, 사복 5, 문정 3 정도였습니다. 마지막에 집계수치상으로 3천8백에 달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사회대 1천 학우 중 이미 모인 80여명 말고 2백 명이 와 준다면, 사회대 20퍼센트의 학생, 경북대 사회과학도 5명 중 1명만 여기 와 준다면 총회는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안 나와 준 사회대 학우들이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졸지에 일일 사회대 회장 역할까지 맡게 되었으니 타 과 회장과 의장에게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법대 회장과 인문대 회장은 총회 시작 각각 10일과 7일 전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습니다. 법대와 인문대 학생들의 참여율이 높고 조직적 이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겠지요. 그 외에도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의 단식, 법대 부회장의 단식과 삭발투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의 투쟁을 보면서 작게나마 고민했습니다. 신방과의 대표로서 학생총회에 어느 만큼의 의미를 부여하고 어느 정도까지 홍보해야 하는 것인가.
학생총회에 모인 인원들을 보면서 과연 내가 정녕 홍보를 한 것이며 내 보고가 할 만큼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방환영회를 홍보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 팔을 붙잡고 꼭 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새터 가자고 과에서 얼굴보기 힘든 친구들한테 수차례 전화했었습니다. …… 학생총회가 신방환영회나 새터 만큼의 열의를 가지고 홍보할 만한 행사가 아니었을까요? 신방환영회 장기자랑이나 새터 단대판 만큼의 의미가 없는 자리였을까요?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선전과 선동을 피한답시고 제대로 된 홍보도 보고도 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합니다. 복학하고 나서 저 스스로를 나타내는 문구를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신념이 있는 허나 이번엔 학생총회에 대한 신념이 없었고 그러니 신명도 나지 않고 선전도 홍보도 아닌 미지근하고 수동적인 단순 메신저로서 총회를 맞았던 것 같습니다. 총회 당일 오후 8시에 총학생회에서 학생총회 뒤풀이가 있었습니다. 당일 사실상의 단대 회장 짓을 하다 보니 총학에서 참석하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쓸데없는 자괴감일지 모르지만 단대별 총화시간이 돌아오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사회과학이란 복잡하게 얽힌 세상의 흐름을 읽고 풀어나가는 학문인데 그런 공부를 하는 사회과학도가 학생총회에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것도 사회과학의 첨병역할을 하는 언론학도 신문방송학도입니다. 장시간의 스터디, 기획회의, 사진 인화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신이 주인공 되는 총회 현장에서 기사 스케치 하고 영상으로 담고 사진으로 포착하는 일 역시 큰 가르침을 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나 총회는 일 년에 한 번 맞이하기도 어려운 실습장입니다. 이 같은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없지만 선전이 아닌 보고를, 선동이 아닌 홍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학회장들과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없는 미온적인 태도를 반성하게 됩니다. 총회가 무산되고 본관 앞에서 짧게 진행된 농성에는 소수의 단대만이 남았습니다. 거기에 사회대 깃발과 신방과 깃발을 들고 신방인이 있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과유불급. 농성이 끝나고 해산하면서 제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신방인에게 했던 이야기로 학생총회 후기를 마무리 짓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날마다 접하는 텍스트에만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행동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이 세상을 바꿀 사람이라 믿습니다. 신방과,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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