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전, 강제윤

책의 소재 자체가 ‘섬에 있는 어머니들’이라 더욱 그렇겠지만, 내 주변을 봐도 그렇고 우리 부모세대를 보면 대개 아버지가 개차반이고 어머니가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이러니 한국 사회에서 확률적(평균적)으로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다만, 지금 기준으로는 100번도 더 이혼했을 상황에서도 어찌저찌 살아 온 부모세대가 지금 손쉽게 이혼하는 세대보다 불행 했을지는 모르겠다. 절대적 빈곤이 해결되면 상대적 빈곤이 문제인것처럼. 각기 시대의 잣대로 행복과 불행을 판단해야 하는 건 아닐까. ‘모두가 함께 당하는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는 말처럼.

 

보름 한 물때마다 몰라보게 씨알이 굵어지던 것이 이제는 삶은 조개처럼 아예 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근처에 있는 보령화력발전소에 나오는 매연 때문이다. 나무들도 시들시들하다가 썩어 주저앉는다. 밭작물도 제대로 자라는 것이 없다.

핵이건 수력이건 화력이건. 발전소는 특히 편의를 누리는 사람과 피해를 보는 사람이 이원화 되어 있다. 부초처럼 자유롭게 떠돌수 있는 젊은 시절에야 더러운 걸 피해 버린다 쳐도. 이런저런 이유로 영영 저기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이나 항의를 할 수 있나.

 

보길도 노인들은 환갑만 지나면 다들 ‘시안(청산가리)’을 몰래 지니고 살았다. 노인들이 그 맹독의 화공약품을 지닌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함이었다. 노인들은 혼자 밥 해 먹을 기력마저 잃게 되면 자식들한테 피해를 주기 싫어서 약을 준비한다고들 했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 순간이 오면 약을 먹고 목숨을 끊는 일이 흔했다. 스스로 치르는 고려장.

안락사에 대한 인간의 고민은 죽음 만큼이나 오래된 건 아닐까. 여러 이유로 삶보다 죽음이 낫다 판단하면, 본인 판단대로 실행하는걸 통칭해 안락사라고 해야 하는건 아닐까. 어쩌면, 빨래를 손쉽게 시행하기 위한 도구가 세탁기인것처럼. 죽음이란 선택을 손쉽게 시행하기 위한 도구로서 안락사절차가 필요하지 않을지.

 

책 소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6892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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