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공부

우리가 마스크를 쓸 때 뜻밖의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왜 그렇게 마스크를 성실히 쓰느냐고 물었는데, 우리 국민의 60퍼센트 이상이 “남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면 스스로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답을 했어요. 그런 생각이 ‘서양 교육을 받아서 습득한 합리성인가요?’라고 반문하면 아닐지도 몰라요……

설문조사 결과가 신선했어요. 그렇지 못한 면을 많이 봐왔잖아요. 일단 내 것 먼저 챙기고 보자는 행동이 심했죠.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기적 태도를 당연시했고요. 코로나19 시대에 이런 기막힌 결과가 나온 것을 보면,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는 공동체 의식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97년 외환위기 때 우리는 금모으기 운동도 했죠. 네 가구 중에 한 가구가 참여했고, 가구당 평균 65그램의 금을 내놓았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07년 국채보상운동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힘들어지면 공동체 의식이 확 살아나는 저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코로나를 거치며, 한국은 적어도 경제 지표로는 단군 이래 가장 잘 나가는 시기를 맞았다. 지구 반대편 선진국에서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백신을 거절하는 걸 보며. 자유니 합리니 우리가 떠받들던 사회의, 어찌보면 원래부터 있었을 한계를 봤지.

그래도, 한국이 왜 마스크를 이리도 잘 쓰고 방역에 (상대적으로)협조적인지에 대한 답으로 ‘국민 마음속에 있는 공동체 의식’이라는 국뽕스러운 답이 나오는 건 아쉽네. 같은 요지라도 좀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조직에 폐가 되면 조직에서 아웃되는 강한 스트레스가 내압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학교에서 신문지만 한 종이에 전교생의 성적을 인쇄해서 나눠줬습니다. 인권이 없었어요. 첫 구간이 1등부터 50등까지인데 이 구간에 들어가면 서울대학교 공대나 자연대 어느 학과든 갔습니다. 그 구간에서 중하위권에 있는 학생들이 의예과에 갔어요.

전국 의대 정원을 다 채운 후 서울대 이과를 채운다는 요즘 입시. 유망 학과는 시기별로 바뀌는데. 분명 바뀌어왔는데도 당장 입시 할 때는 그 유망함이 바뀔거라는 생각 따위 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수십년 후의 유망함을 어차피 예견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최대의 가치를 주는 선택지를 뽑는게 합리적일지도.



물리학자들은 생물학자들에게 윽박지르며 살아왔습니다. 물리학에는 만유인력의 법칙, 양자역학의 법칙 등이 있는데. 생물학엔 없지 않느냐고요. 저는 찰스 다윈의 이론이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조건만 맞으면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진화적 변화가 있는데 그것이 법칙이고 원리라고요.



5일 후에 마칠 일을 5일 전에 끝낸다는 겁니다. 미리 끝내고 틈날 때마다 리포트를 다시 들여다보며 조금씩 고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질이 좋아질 뿐 아니라 돌발 변수가 생겨도 대처할 시간이 있다고요.
그날부터 저는 ‘미리한다’가 습관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언제까지 끝내야 하는 일’은 1주일이나 2주일 전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됐어요.
미리 다 해놓습니다. 남은 기간 저는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30분 정도 여유가 생기면 그 때 다시 그 일을 살펴봅니다. 한 번 더 읽어 보고, 조금 고치고 파일을 저장하죠……
그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생산성을 갖게 됐죠.

최재천 씨가 생산성을 극도로 높인 방법이다. 남들은 닥치면 하는 걸 이 사람은 1주일 전에 끝내고 계속 퇴고한다. 이론적으로 남들보다 같은 일을 1주일이나 더 들여다보니 더 나은 산출물을 낼 수 밖에. 이렇듯 비법은 간단하다. 다만 행하기 어려울 뿐.



중요한 건 재미있더라고요. 동물에 대해서 배우니 좋아서 더 잘했던 거죠. 최재천, 너 이런 애였어 라고 물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인간은 왜 잠을 자야 할까? 나는 할 게 너무 많고 읽을 게 너무 많은데 왜 이렇게 피곤하고 졸릴까? 나를 용서할 수가 없다’라는 이상한 말을 제 마음속에서 하고 있더라고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루고, 이를 책으로 쓴 사람 이야기에서 가려들어야 할 지점이 바로 이런 곳이다. 운명이건 노력이건 자질이건, 대단한 성취에는 분명 나름의 이유나 계기가 있고. 이게 책을 읽는 독자에게 똑같이 적용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아니, 대개 그렇다. 자기 분야를 공부하면서 ‘왜 잠을 자야할까?’라는 생각까지 드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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