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론교육 -> 어구제작 -> 어선 조업 순으로, 실제 어촌에서 하는 일을 순차적으로 경험하게 구성된 프로그램인데. 당장 교육 첫날부터 순서가 바꼈다.
이번 주에 바람이 많이 불어 배 뜨는 날이 월요일 당일 밖에 없어 일정이 바꼈다. 이 자체가 교육이다. 바다는 사람 맘대로 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고, 그에 맞춰 할 일을 찾아야 한단 것.
아래는 교육에서 들은 이야기에 내 생각을 버무려 임의 정리한거니. 정확한 정보라 오인 말길.
어업 이론교육
- 낚시배 면허가 나온 배경
- 물고기 씨 마르는 걸 막기 위해 나라에서 금어기 지정 -> 엄청 강력한 제재!
- 어민들 왈 ‘그럼 금어기 때 우리는 손가락 빠냐?’
- 정부 왈 ‘아, 그러네. 그럼 낚시꾼 태우는 낚시 어업 면허 발급해 줄게’
- 낚시꾼 태울때 돈 받으면 신고하는 ‘면허’가 필요하고, 돈 안 받으면 그냥 ‘레저’
- 3톤 어선 연간 보험료 얼추 800만원, 나라 지원 받은 후 실 납부 보험료는 얼추 150만원.
- 비단 어업뿐 아니라 농어촌 전반에 국가 지원금이 엄청난 수준
- 이렇게 지원 없이 순익이 나질 않는다면, 소형 어선 조업 자체가 자생이 어려운 모델 아닌가?
귀어 사례교육
- 인터넷에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정말 내게 딱 맞는 정보는 없다. 그건 직접 찾고 만나야 한다. 그걸 절감한 교육이었다.
- 미디어에 나오는 극단적 촌 텃세는 적어도 가경주엔 없다.
- 강한 텃세 부리기엔 원주민 나이가 너무 많다. 되려 어르신들은 자기네 일상에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외인 유입에 무관심한 편.
- 다만, 글자 그대로의 텃세는 존재한다. 내 생각엔 텃세는 촌 뿐 아니라 인간이 사는 모든 환경과 집단에 있다. 땅이나 환경을 선점하고 가꿔온 자가 가진 우선권/주도권 개념으로 존중 받아야 하는 면이 있다.
- 이권이 부딪힐때 어떤 형태로건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이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냐가 관건. 마을 경제 공동체가 한 단계 나아가느냐. 아니면 매번 서로 다리잡고 자빠져 영영 못 일어나느냐를 가른다.
- 각개의 점 처럼 떨어져 있던 마을 사람들과 각 요소를 하나씩 이으며 서사를 만드는 게 지원사업.
- 마을 임원진은 그대로지만, 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냐. 혹은 서류에 어떤 스토리를 입히냐에 따라 산출물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 귀어인 임대주택, 책방, 바를 만들고. 단순히 생물 판매만 하던 꽃게를 젓갈로 가공하는 공장을 짓고. 점차 콘텐츠를 확장하며 마을 부가가치와 자생력을 높여 나가는 것.
어구제작/수선
- 바람 불거나 비가 와 배를 띄울 수 없을때 하는 게 어구제작 및 수선
- 자영업인 선장님들에게는 ‘이게 쉬는 시간’
- 그냥 언제건 시간 나면 그냥 쉬지 않고 뭐든 한다는 촌 정신에 들어 맞는 작업
‘자, 이 쪽에 이거를 꿰고. 한 마디에 총 여섯개 그물코를 넣고……’ 말은 알겠는데. 한 두 시간 실습으로 익힐 수준의 작업은 아니다.
정말 뇌를 비우고 몸이 가는 대로 하는 경지가 되면. 선장님 말대로 쉬듯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반조립된 어구를 완조립하거나 수리하지 않고, 그 시간에 더 부가가치 높은 뭔가를 할 수 있다면? 그런 꺼리를 만들 수 있다면?
현재 선장 님들이 들려주는 조건을 그대로 넣고 어선 한 척에 대한 투자수익을 가늠해보면 너무 낮다. 인건비를 갈아 넣어 수익을 만들거나. 그 조차도 여러 항목의 국가 지원금이 없다면 순익 내기 어려운 구조. (어구에도 선박용 유류에도 정부 보조금이 붙는다)
어선 조업
자망 배와 통발 배를 번갈아 타고 고기 잡이 체험을 한다.
요게 자망 어선
요게 자망을 끌어올리는 도르레.
주로 꽃게가 잡힌다. 가끔 눈 먼 가오리와 소라도 그물에 걸리더라.
자망에는 수산시장에서 보기 힘든 큰 꽃게도 꽤 잡히는 데. 이건 위판장이 아닌 백화점으로 바로 납품한단다.
한국이 못 살던 시절 고급 어종은 모두 일본으로 갔던 거랑 비슷한 결. 압도적으로 높은 가격을 치르면, 압도적인 상품을 가져갈 수 있다.
자망은 100미터 단위 긴 그물망인데. 별도 미끼로 유혹하는게 아니라, 긴 망에 꽃게가 걸리면 빠져나가려 특유의 게헤엄을 치다 붉은색 얇은 그물에 깊게 휘감켜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것.
망에서 빨간 그물을 칼로 잘라 떼내는 데, 가끔 수산시장에서 보면 꽃게에 미처 덜 땐 붉은 줄이 있다. 그게 바로 자망 그물이 덜 떨어진 것.
잡힌 꽃게는 위협적인 집게발 아래쪽을 니퍼로 잘라낸 후 보관한다. 집게발을 그대로 두면 자기네끼리 싸우면서 자르고 잘라먹는단다. 소비자 분들은 집게발 아래쪽이 없는 게 당연한 공정이므로 안심하셔도 됩니다.
배 바닥에서 바로바로 그물에 걸린 꽃게를 떼내는 작업을 하는데. 어지간해선 멀미가 안 나기 어렵더라. 결국 도중에 너무 어지러워 작업에서 손을 떼고 난간을 부여잡으며 버텼다.
선장님 한 분께 여쭤보니, 본인 3톤짜리 어선 한 척으로 얼추 연매출 3억을 올린다는데. 인건비, 기름비, 어선 감가상각, 보험료 같은 직접 지출 외에. 로프 휘감기는 등의 심각한 부상 위험과 어구/어선 파손 위험까지 고려하면. ROI 측면에선 매력적이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
멀미는 무조건 적응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론 당장 그 미친 멀미를 참고 멀리 조업 나가는게 가장 고역이란 생각도 들고.
바지락 채취(맨손어업)
유료로 진행하는 체험 마을에서는 그냥 긁으면 나왔는데.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너무 안 나와서 다들 당황.
나중에 본부장 님께 들으니. 그 자리에 바지락이 없으면 많이 나는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마을 행사 준비 때문에 인솔에 신경을 못 써서 발생한 참사라고…
귀어하신 본부장님 조차도 원어민 아주머니들 캐는 속도의 5분의 1 수준이라 하니. 역시 맨손어업도 원주민들과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다.
체험객이 우리 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인지하고 -> 방문하고 -> 체험하고 -> 산출물을 받아 돌아가고 -> 피드백을 남기는 커스터머저니 관점의 관리. 뭐 이런거를 해야지 내가 조직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듯.
마을 잔치 참여
제 1회 노을축제 첫날 준비 현장. 너무 다행히도, 가경주 바다는 비바람으로 우리를 내치지 않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니모 전기차. 관람객을 끊임없이 실어날랐다.
다른 체험마을은 트랙터 뒤에 트레일러를 연결하거나 경운기로 실어나른다는데. 이 또한 가경주 마을의 차별화 요소다.
가경주가 각종 지자체 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마련한 좌 니모, 우 트랙터
1회 행사답지 않게, 첫날부터 1천여명이 넘게 방문하고. 모든 준비한 음식과 판매할 상품은 조기 품절됐다. 음식을 넉넉지 않게 준비하고 내는 것도 느린 것도 있었고. 날씨 탓에 배가 못 떠 판매할 상품 자체가 적은 것도 있었지만.
대외 홍보까지 하는 행사고, 군이나 면이 아닌 고작 가경주라는 리 수준의 마을이 여는 1회 행사라는 걸 생각하면 대단하다.
뒤풀이 자리에서 이런저런 행사에 대한 소회와 보완했으면 하는 점이 나왔는데. 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단, 어차피 보완할 점은 100가지 1,000가지도 만들 수 있다.
행사 개최를 결정하기 전에도 개최하면 안 되는 이유 100가지 1,000가지 나왔을 것. 그 말 듣고 행사를 안 했다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결국 일이 되게 하려는 사람은 할 방법을 찾고, 안 하려는 사람은 안 될 방법만 모은다. 진짜 중요한 요소가 뭔지 추려서 잘 찾는 식견은 있어야겠지.
그 외, 가경주 살이
매일 아침 일출과 저녁의 일몰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보통 서해는 일몰만 즐길 수 있지만, 가경주는 안면도의 끄트머리라 동쪽 일출과 서쪽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노력으론 안 되는, 자연 입지 그 자체에서 오는 장점이다. 누가 훔쳐갈수도 없는.
또 매일 아침, 기본으로 제공되는 샐러드/빵 외에. 바다에서 조달한 해산물과 라면 조합으로 다섯 개의 화구는 불타오른다.
둘째날부터 넷째날 아침까지 주구장창 먹었던 꽃게라면.
매일 밤에는 캠프파이어. 숙소에 화롯대가 없는데, 눈썰미 좋으신 참가자 한 분이 점심 먹다 고물상에서 화롯대 발견. 1만원에 구매해 주구장창 활용했다. 덕분에 스무 명의 다섯 밤이 따뜻했다.
숙소에 아침 저녁마다 찾아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먹을거리를 가져가던 고양이 가족.
마을 어귀에도 고양이가 빠질 수 없지. 귀가 잘린걸 보니 중성화수술 사업이 여기도 빠짐없이 진행중인가봄.
일주일 간 묵었던 ‘가경주 스테이’ 펜션.
2인 1실 혹은 1인 1실로 진행됐는데. 지극히 개인 취향이지만. 좀 더 밀도 높은 프로그램을 진행을 위해 4인 1실이나 6인 1실로 아예 밀착 공동체 생활로 갔으면 했다.
1기 후기 중에는 2인 1실도 불편해하는 분이 계시니. 다인실로 가면 프로그램의 대중적 매력은 많이 떨어질테고, 이를 고려해 아예 프로그램을 분리하자는 것. 마치 심화반이랄까?
개인 공간과 공동 공간의 분리가 너무나 자연스런 젊은세대 생활양식을 모르는 건 아니나. 아예 집체교육 컨셉의 프로그램은 어떨까 하는 생각.
첨에는 경악스러울만치 놀라운 일출과 일몰도, 갓 잡은 해산물의 탱탱함도. 일생 여기서 보내는 원주민에겐 마치 우리네 지하철 2호선 문 열고 닫힘 같은 일상의 반복이겠지.
아마 주인 분이 장수하셔서 가게 이름을 장수 슈퍼로 지었을텐데. 인간의 장수라는 건 결국 순간이고 상대적인 것. 물건이 깨끗이 비워진지 꽤 되어 보이는 마을 어귀 슈퍼마켓. 인구 소멸의 한 단면이다.
첫날 잡은 문어를 찍어먹기 위해 초고추장 조달 임무를 맡게 됐는데. 동네 유일 편의점에서 만난, 단 하나 남은 초고추장.
라면도 20개를 맞추기 위해 진라면 매운맛과 순한맛을 함께 사야만 했다. 인구는 물론 물자 공급도 소멸 위기.
숙소 귀퉁이 수영장.
잘 관리했을때는 근사했을 모양새인데. 물을 넣고 꾸준히 관리할만큼의 ROI가 안 나왔을 것. 한때 바닷빛을 흉내 냈을 바닥 푸른 페인트가 과거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한다.
펜션 수영장 정반대 귀퉁이에 있는 벽돌 아궁이. 여기에도 솥을 걸어 뭔가 대단한 걸 해 먹던 시절이 있었겠지?
프로그램 총평
고작 5박 6일 동안 어촌을 얼마나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그게 한달이건 1년이건 쉽지 않다는 쪽으로 결론 난다.
적어도 5박 6일이란 한정된 시간 안에선 적절히 잘 배치된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짧게나마 어촌의 ‘일’을 해 볼 수 있다는게 크다.
이것보다 더 밀도 높은 합숙 집체교육 프로그램도 있으면 어떨까 싶은데. 추후에 수요가 있으면 확장할 수 있겠지.
5박 6일 간 공공기관 지원금으로 편하게 어촌에서 쉬다가려는 참여자만 아니라면, 모두 소중한 경험이라는 선물을 얻어갈 수 있었을 것.
새삼 우리를 반겨줬던 어촌 분들과 주최자 분들께 감사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