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로서 한번은 복기해 볼 꼭지라 생각해, 두서없지만 생각을 나열해 본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대한민국은, 특히 MB이후 ‘해봐서 아는데’가 중요하다. 트레바리 6회(기간으로 환산시 만 2년), 크리에이터클럽 1회 경력을 발판삼아, ‘전지적 내가 해봐서 아는데 관점’으로 서술한다.
트레바리는 살아남은 이유
자체 결론부터 말하면, ‘세상을 더 지적으로’라는 비전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무슨 기업 사보 같은 소리냐 할 수 있는데. 코로나 시국에도 잘 살아남은 이런저런 이유의 파편을 모아보니. 진짜 저거 같다.
비전을 명확히 했고, 그걸 잃지 않다보니. 비전에 동의하는 직원을 채용하고, 동의하는 기관의 투자 자금도 모았다. 이를 통해 더 나은 모임을 만들 수 있게 구조(시스템)를 개선해 나갔다.
트레바리 같은 커뮤니티 서비스는 근본적으로 공산품 같은 균질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소비자들 간 상호작용으로 서비스 질이 결정되므로 제공자의 역할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제공자의 핵심 역할은 서비스 퀄리티의 하한선을 높이는 거라고 본다. 즉, 최악의 경험을 방지하는 안전망 제공이랄까.
예를 들어, 장소를 보자. 트레바리 모임에 나가면 어느 지점이건 멀끔한 건물과 책상과 화장실을 만난다. 남녀공용 푸세식 화장실이 딸린 근생빌라 2층 모임방이 아니란 말이다. 이것 만으로도 장소에서 최악의 하한선은 훅 높아진다.
사람? 좋은(핏이 맞는) 사람이냐는 것과 별개로. 20만원 이상 회비 자체가 일종의 필터다. 어떤 방면으로건 너무 터무니없는 참가자는 거르게 되는 자본주의 필터로 작용한다.
그 외에도 토론을 구성하는 디테일한 룰, 오프라인 모임이 끝난 후 온라인경험으로 이어지는 카톡방 체계와 매번 디테일이 바뀌는 웹사이트 등등. 이런 구조가 나쁜 경험의 하한선을 계속 끌어올려 준다.
물론, 소비자의 환상적인 경험은 좋은 시스템이 아니라, 해당 모임을 구성하는 파트너/클럽장/참석자에 따라 결정된다.
트레바리는 듀오바리인가?
소셜, 살롱, 지적 허영, 관계의 허영, 짝짓기. 뭐 이런 단어가 ‘트레바리 알고보면’ 앞뒤에 따라붙는 단어 같은데.
‘사귐’은 그게 짝짓기 건 사냥 멤버 구하는 행위 건 인류 생긴 이래로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방식이 지식산업사회, SNS기반 네트워킹 사회가 됨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 거고. 거기에 잘 부합한 쿨한 커뮤니티 서비스가 나왔을 뿐.
지적허영이나 뻔한 짝짓기 모임이 트레바리의 본질이라고 시니컬하게 혹평하는 분들이 있던데.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까지 정색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듀오가 성혼을 잘 시키면 칭찬할 일이지, ‘저것들 죄다 동물의 왕국처럼 짝짓기 하려는 애들’이라고 욕할 일인가.(솔직히, 그거 기대하고 갔는데 내 짝 못 찾았다는 분들은 화풀이 해도 된다. 그런 분풀이 정도는 소비자로서 해도 되지 않나.)
크클은 사라진(사라졌나?) 이유
잘 된 서비스를 혹평하는건 쉬워도, 안 된 서비스를 혹평하는 건 좀 어렵다. 그 조직이 나름의 한계를 안고 치열하게 싸웠을걸 생각하면, 시체에 염하는 것도 아니고 끝난 서비스에 소금뿌리는 행위가 도의가 아닌 생각도 들고. 외부인의 한정된 시각에서 실패사유를 정확히 알기도 어렵단 생각 때문.
크클은 딱 한 번 해봤는데. ‘중2병스러움’을 느꼈다. 비하는 아니고, 중2병은 인간이 그 시기에 나름 거쳐야할 성장통 같은거라 마냥 나쁜건 아닌데. 나와는 맞지 않았달까.
여튼, 크클이 코로나를 헤쳐나오지 못한 이유도. 사람들이 크클에게서 바라는 비전이 끝까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코로나 이후 사업모델을 약간 트는(피벗이라 하기엔 애매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강남 소셜 소개팅 바? 같은 걸 하더라. 강남 테헤란로 지하 1층에 멋드러진 공간이 마침 있고. 그전까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을 했으니. 이 물리적 공간과 운영의 묘를 결합해 자연스런 신개념 미팅 바로 전환한다는 발상 자체는 납득이 된다.
근데. 크클의 전신이 열정에 기름붓기였던 걸로 아는데. 이렇게 반쯤 노골적인 미팅 바가 열정에 기름을 붓나?(가슴에 기름을 붓긴 하지) 물론 크클 회원도 충분히 소개팅/미팅/혹은 바에서의 느슨한 연결을 원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걸 기존에 알던 크클한테 바라는 건 아니라는 것. 크클의 코어 팬층이 여기 바를 자주 이용했었을지 의문이다.
작정하고 소개팅 시켜주는 1:1 매칭 업체가 아닌 느슨한 연결을 이루려면, 애초에 해당 공간에 모인 사람 수가 좀 많아야 한다. 클럽과 나이트가 잘 되는 비법은 표면적으론 간단하지 않은가. 단위 공간당 사람이 많으면 된다.(보통 여자가)
근데 코로나 시국에 사람을 일정 이상 밀도로 유지시키는 건 어려웠을테고, ‘거기 별거 없더라’는 경험을 한 고객이 퍼트리는 입소문은 악순환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을지.
회사는 망해도 사람은 남는다.
크클 대표나 스탭들은 당시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한 경험을 가지고, 또 다른 문제를 풀기 위해 골똘히 고민하지 않을지. 그들이 다시 돌아올 때 어떤 문제와 해답을 들고 돌아올지 궁금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