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를 돌아보게 하는 –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책 제목 :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저자 : 조갑제
정가 : 3600원 (할인가 : 원)
출판사 : 한길사
출간일 : 1986. 11. 01

 


신문방송학과 수업을 듣다보면 조갑제 기자에 관한 이야기를 꼭 한 번쯤은 듣게 된다.

경찰보다 더 무섭게 사건을 파고드는 집념, 근성으로 취재하는 탐사보도의 달인

열혈 기자 조갑제

 
지금은 극우 인사로 불리기도 하지만, 젊었을 때의 그는 어떤 기준으로 보든 대단한 기자임에 틀림없다.

신문론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교수님이 들려주신 일화

조갑제씨가 땅굴 관련 취재를 하며 여기에 북한군 땅굴이 있다며 직접 장비를 불러서 땅을 팠단다.

결론은?

만약 있었다면 언론계 전설이 되었겠지.

 

 

이 책에서 조갑제는 사형수 오휘웅씨 이야기를 통해 주먹구구식 수사관행과 무전유죄 사법제도, 특히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는 사형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전한다.

 
오휘웅씨 사건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오씨가 남묘호랭객교에서 두이분이라는 유부녀를 만나 내연의 관계를 갖게 된다.

어느 날 두 여인 집에서 두 여인의 남편과 두 아이가 목 졸려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여기서 ‘두’는 각운이 아니다 ㅡ,.ㅡ…)

경찰은 처음엔 자살이라 여기다 며칠 후 오휘웅씨와 두이분씨의 계획적인 교살로 수사방향을 바꾼다.

법정에 서기 전까지 갖은 고문으로 오휘웅씨는 자기가 죽였다는 거짓 자백을 하게 되고 정황상 진범으로 의심되며 오씨의 무죄를 입증해 줄 유일한 증인인 두 여인은 교도소 안에서 자살 해 버린다.

여기서 지리멸렬한(하지만 오휘웅씨는 필사적이었을) 재판과 항소와 상고가 이어진다.

 
결국 오휘웅씨는 만 34세, 구속된 지 4년 9개월, 사형이 확정된 지 3년 7개월 만에 처형됐다.

그가 처형장에서 남긴 유언은 아래와 같다

“하느님, 천당 가게 해 주십시오. 저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느님도 알고 계십니다. 저의 유언을 가족에게 꼭 전하여 제가 죽은 뒤에라도 이 원한을 풀어주도록 해주십시오. 여기, 검사/판사도 나와 있지만(필자 주 : 판사는 집행장에 안 나옴) 정신 바짝 차려서 저와 같이 억울하게 죽는 이가 없도록 해 주십시오. 이런 엉터리 재판 집어치십시오! 저는 기독교인으로 죽습니다.”

 

대강 이런 취지의 말 끝에 오씨는 저주를 남겼다.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위증한 사람들과 고문수사한 사람들과 오판한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는 가슴 서늘한 이야기였다.

– 251쪽


 

 오씨를 처형한 후의 풍경을 묘사한 부분은 처형을 집행한 사람들조차 그가 무죄임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씨가 밧줄에 매달려 있는 동안 집행 참여자들은 건물 바깥 느티나무 밑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했다.

서울구치소 보안과장이 참여 검사에게 물었다.

“영감님, 오판 아닙니까?”

검사는 교무계장에게 “억울하다고 죽는 사형수가 많습니까?” 하고 물었다.

계장은 “아니오, 나로선 처음입니다”고 했다.

보안과장이 “상담할 때도 그랬어?” 하고 다시 물었다.

계장은 “그걸 모르셨어요? 오휘웅이는 안 죽인 것 같아요“ 라고 했다.

검사는 이때 말없이 땅만 내려다보더라는 것이다.

– 252쪽

 

 
조갑제가 재판 기록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는 오휘웅씨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다 역지사지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오씨가 왜 좀 더 대차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느냐고 짜증을 부리는 것은, 16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주로 경찰서 출입을 했고, 한번도 경찰이 두렵다는 것을 실감해 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의 세상물정 모르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에 수도검침원이란 직업을 가진 한 서민이 경찰, 검찰, 법원이란 막강한 조직과 부딪쳤을 때 느꼈을 공포감과 무력감을 모르고 내뱉는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 150, 151쪽


 
자꾸 조갑제 닷컴의 조갑제가 떠올라서 비교가 되는 건 왜일까?

이때는 이렇게 역지사지도 잘했는데.

 

 

책 후반부에서 오휘웅씨 이외에도 여러 사건을 예로 들어 경찰의 고문, 검찰의 고문, 재판부의 무성의한 재판, 무료 변호를 자선경력쌓기 정도로 생각하는 변호사에 의해 돈 없고 힘 없고 배운 것 없는 자들이 억울하게 사법 살인 당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나는 취재가 안 풀려 답답해질 때마다, 가장 완벽한 증거인멸은 사형집행이라는 말의 뜻을 실감했다.

“오씨가 살아 있다면 이 대목의 이 의문점을 풀어줄 텐데…” 하고 안타까와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씨는 그의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많은 사람들에게 확신시켜주었다.

생각해보면, 한 인간이 죽음으로써만 자신의 무고함을 증거할 수 있는 사회는 얼마나 끔찍한 곳인가?

형장에서 진실이 드러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시화씨(두 여인의 남편)와 그의 두 아이들,그리고 오휘웅씨의 명복을 빈다.

– 340쪽


 
사건이 있은지 10년도 더 지난 후에 기사를 취재하는데 마치 어제 일어난 특종을 취재하는 것 마냥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발로 뛰면서 얻은 정보를 머리로 다시 한 번 종합하는 기자가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단행본이다.

수사와 재판의 진행, 검사와 재판부의 허술한 논리를 반박하는 부분은 잘 짜여진 형사 추리소설 같아 실화만 아니라면, 그리고 무고한 이의 사형으로 끝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소설이라 해도 좋을 뻔 했다.

 
이 책에서 조갑제는 고문은 근절되어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하지만, 사형은 폐지하자고 단언하기보다 오판을 최대한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애둘러 말한다.

 
책 읽는 내내 나에겐 ‘사형제도의 존폐’와 ‘조갑제의 어제와 오늘’ 이란 두 가지 생각할 거리가 번갈아가며 등장했기에 더욱 재밌었다.

반면 독후감상문을 쓰는 데는 두 가지 생각할 거리가 엉켜서 그걸 풀어 놓느라 좀 힘들긴 하지만.

 
젊은 기자 조갑제가 쓴 머리말을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어느 사회의 양식을 가늠해보는 한 기준은, “그 사회의 소수파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라고 한다. 장애자를 위한 정부예산은 그 국가의 국민 총생산에 비례하지 않고, 그 국가의 민주화 정도에 비례한다는 조사보고도 있다. 민주화란 것은 결국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이고, 그런 사회에서는 고통받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다수의 사람들이 애정어린 관심을 갖게 된다는 뜻이겠다.

– 머리글, 2쪽


 

곱게 늙자.

젊은시절의 열정이 바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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