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_’중간지대는 없다’_역설의 연속

전시 단상

방문일자 : 25년 8월 27일.

북서울미술관 전시실 1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해당 전시 최대 역설을 만난다.

전시 후원사가 에르메스.

전시는 현 체재에 대한 모순과 비판적 거리두기를 이야기하는데. 체제에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치재 기업이 후원한다?

들어보니 에르메스가 해당 전시를 꼭 집어 후원하는게 아니라. 북서울미술관 전시를 10년 장기 후원하는 형태라고 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도 후원사가 아닌 공간과 전시 컨셉이 중요했을테지.

귀족을 위한 마구 공방에서 지금은 자본주의 최상층 귀족을 위한 장식품 제작사가 후원을 한다니. 그리고 그 역설을 제1 전시관 입구에서 바로 만나다니. 이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이고 설치 미술 아닌가?

결국 보여주는건 작가지만 해석은 관람자 몫이라는. 이번 전시 공동의 주제랑도 맞닿아있는듯.


역설을 너무 남발하는거 같은데. 또하나 역설.

2층 전시에 현대중공업 노동쟁의를 배경으로 하는 다큐가 상영되는데. 오늘 현대중공업 주가 11퍼센트 상승 마감.

살아남은 현중 관계자 절대다수는 오늘 주가창과 함께 기업사를 갱신해 나갈테고, 극소수 만이 2층 상영실 다큐와 그 사건을 기억할텐데.

결국 아주 작은 비중이지만 썩지않게하는 소금같은 건가. 예술이란게.

당시 조선일보 객원기자였던 고운호 기자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한국 언론과 SNS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여유롭게 팔짱을 낀 권력자의 모습은 밈이 되어 수많은 패러디를 생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사진에 ‘포토 저널리즘의 쾌거’라며 찬사를 보냈고 이달의 기자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기자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약 다섯 시간을 대기하며 900장 정도의 사진을 연사로 찍었는데 600mm 망원렌즈에 2배율 텔레컨버터를 끼우고 촬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점이나 피사체의 표정, 자세를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이후 사무실에서 사진부장과 함께 900장을 확인하면서 해당 사진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진이 당시 국민들의 분노를 잘 드러낸다고 판단해 최종적으로 ‘선택’ 되었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비슷한 징후가 발견된다. 사진의 정치적 힘은 촬영에 있지 않고 보는 데서 등장한다. 사진은 현장에서 ‘포착’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의 선택 이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진의 힘은 현장의 팩트와도 큰 상관이 없다. 우병우가 어떤 상황에서 팔짱을 끼게 됐는지, 게다가 그것이 조사실의 상황을 증명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보는 사람들의 ‘분노’였고 결국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이 사진이
가진 힘의 원천이었다.

누구나 손에 사진기 딸린 휴대폰을 들고 다니고 인스타를 하면서, 사진 촬영과 배포는 범람하게 됐다. 이제 사진을 찍을 수 있냐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운전처럼 예전엔 그 자체가 권력이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중요한 건 작가 말마따나 ‘발견’되느냐이고. 이는 곧 ‘설득할 수 있다면 모든 게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현대 예술 정의와 맞닿아 있다.

특히 작가 말 중 ‘현장의 팩트와 큰 상관이 없다’는 부분에 울림이 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으로. 우병우 재수없었는데 마침 딱 내가 보고 싶어하는 사진이 실린 것 뿐. 정말 저 사진이 찍힌 저 순간 우병우가 수사관 앞에서 선배 노릇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건 나와 다수 대중에게는 상관 없는 거였다. 우린 그저 우병우의 재수없음을 ‘발견’하고 싶었을 뿐.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12·3 계엄 후 광장으로 나선 시민을 보면서 한동안 그를 붙잡았던 생각, “사진은
내란만큼 세계를 각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사진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빛으로 각인한다는 점에서 지표적이지만, 당시의 시공간과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 탈각되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읽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과거 작가는 무작정 현장으로 가서 은폐된 어떤 것을 찾고자 했지만, 이제는 촬영의 무용성에 관해 생각한다.

작가가 느끼기에 오늘날과 같은 이미지 과잉 시대에는 사진의 정치적인 힘이 촬영에 있지 않고, 보는 데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진은 현장에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발견’되고 이로써 사건이
된다.

“예술이란 당신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 에드 루샤, 미술가”

이 정의에 의하면 계엄은 예술이고, 작가 말에 의하면 내란은 국가 단위로 작용하는 카페인이다.

사진이 사건이 되려면 ‘발견’ 되어야 한다. 사회에 충격을 주며 회자되어야 하는 것.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채택되는게 사건이 된 사진이다.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사진들의 정치성은 어떤 상황에서 획득될 수 있을까? 정치적인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그 자체로 정치적일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피사체와 촬영자의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정치적인 장소에 있는 거의 모든 촬영자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특정한 대상을 찾아 특정한 형식과 그것을 위한 광학 기계의 조합을 통해 사진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목적이 드러날 만한 장면을 쉴 새 없이 관찰하다 운명적 순간이 발견되면 순식간에 몸이 반응한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눈으로 가상의 프레임을 설정한다. 빛의 각도를 확인하고 적정 노출된 사진을 미리 상상하며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를 계산한다. 어떤 경우에는 ISO 수치와 플래시의 강도, 각도까지 변수로 설정하고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여 카메라 설정값을 조절한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 앞에 다다르면 몸을 웅크린 채 숨을 참고 셔터를 끊는다.

하지만 사진의 큰 어려움은 더 이상 이 복잡한 과정이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는 크게 중요한 부분도 아닐뿐더러 대부분 전달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내 망막을 스쳐간 수많은 사진 중 한 장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촬영자는 늘 억울하다. 이렇게 어렵게 포착해 낸 사진이 보는 사람에게는 그저 길고양이 한 마리가 찍힌 사진과 동등하다는 것(사실 더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시대의 탈정치화에 대해 쓴소리를 뱉는다.

앞의 길고 긴 사진 작가 입장은 결국 뒷부분 ‘그건 모르겠고’와 대비하기 위한 구구절절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이제 기성세대 인지라. 생활 속 장인들이 신기술에 의해 밀려나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새로운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

2층 다큐에도 나오지 않던가. 예술은 전승되는게 아니라 전복되며 이어져 온다고.

딱 내 눈높이에서 찍은 작품 설명 딱지.

전시회 다니면서 늘 느끼는 거지만, 이번 전시회 작품 설명은 내 눈높이 보다 유독 아래 붙어있다. 전시회 주 소비층이 여성이기도 하고, 높은 거 보단 낮은 게 다수의 접근성 측면에서 더 나을 거라 생각은 하는데. 이번 전시는 유독 이렇게 낮은 이유가 뭘까.

더 낮은 곳에서 길어 올린 소리라는 건가. 거북목을 더 예술적으로 꺾어야 하더라.

북서울 미술관과 강북

넓고 쾌적한 북서울미술관을 보며 든 생각. 참 살기 좋고 여유로운 동네 아닌가.

강남 한복판에는 이런 여유로운 공간이 들어서긴 어렵겠다 싶으면서. 구 단위의 공공 젠트리피케이션 비슷한게 아닌가 싶더라.

넓고 싼 대지를 가진 강북이어서 들어설 수 있는 문화시설. 이제 여기까지 포화되면 남양주와 김포로 가는 건가 싶은.

북서울미술관을 둘러싼 여유로운 녹지를, 폐업한 대형 아울렛과 복합몰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 강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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