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나라, 추락하는 서비스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서비스는 나름의 이유와 한계로 성장하고 멸망한다. 중고나라 서비스의 한계에 대해, 사용자 입장에서 든 생각을 끄적여 본다.

중고나라에 대한 기억 1.

4년 전이다. 캐나다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얘가 맛나는 스테이크를 대접해 주겠단다. 스테이크를 굽기 위해선 환기 팬을 먼저 사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북미의 중고나라 같은 앱으로 거래하는 현장까지 따라간 적이 있다.

그 앱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대략 1천만명 쯤 쓰는 북미의 되게 유명한 중고거래 앱’이라더라. 근데 당시 중고나라 카페 가입자 수는 1,500만명으로 더 많다고 했더랬지. 대한민국에서 PC할 줄 아는 경제 인구 대부분은 중고나라 카페에 가입해 있는 셈.

그만큼 4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중고거래는 곧 중고나라였다. 북미의 어떤 중고거래 앱과 견줘도 사용자 수가 대단하다 할만큼.

중고나라에 대한 기억2.

그 카나다 친구가 최근 한국에 놀러왔다. 자기가 중고나라에 물건을 내놨더니 이유도 모르게 게시글이 삭제된 경험을 이야기 해주더라. 마침 나도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경험을 해 함께 분개했다. 이러니 중고나라가 안 되는 거라며. 요즘 한국에는 중고나라 대신 당근마켓이란 걸 쓴다고 말해줬다.

판매자 경험 관리에 실패하고 있는 중고나라.

중고나라 기업과 운영 담당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테지만. 일단 사용자 경험에서 빡치는 포인트를 기술해 본다.

1. 내가 작성한 매물이 아무 통보도 없이 삭제된다.
2. 더 빡치는 것은 삭제당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1번을 통해 매물을 등록하려는 사용자는 중고나라 서비스에 불신을 갖게 되는데, 2번을 통해 재사용 의지마저 꺾인다.

대개 사용자는 업자가 아니기에 최초 작성글이 날라가면 재작성하는 정성을 들이기 쉽지 않다. 4년 전에는 대체제가 거의 없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작성했겠지만. 지금은 당근마켓이라는 너무 좋은 대체제가 생겨버렸다.

자, 이제 중고나라 사업부 측 입장을 좀 헤아려보자.
기업 입장에선 관리할 포인트가 천개 이상 있을 거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걸 잡아내 우선순위대로 해내는 게 운영 아닌가. 중고나라는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고, 이런 유통 플랫폼은 판매자를 먼저 잘 끌어 오는 게 중요하다.

그간 중고나라에 중고판매 업자들이 난립해 게시물을 대량 업로드하며, ‘업자나라’라는 별명이 생겨버렸다. 이걸 당연히 중고나라도 인식했을 것. 업자로 의심되거나 관리 양식에서 벗어나는 글은 자동 삭제하는 프로세스를 만든 걸로 추정된다. 게시글이 등록되자 마자 수십초 내 삭제되는 걸로 보면 수작업이 아닌 크롤링 방식인 듯. 혹시 1차 삭제를 수작업으로 한다면 그건 다른 의미에서 할말 없는 서비스고.

중고나라의 문제 인식과 해결 방향성(업자글 삭제 등 관리)은 동감. 문제는 디테일한 처리 방식에 있다. 혹시나 싶어 ‘중고나라 거래글 삭제’로 검색하니, ‘게시글이 삭제됐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라는 글이 여럿이다. 내가 중고나라 여론 볼륨 분석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 정량분석은 생략. 이런 현상에 대한 VOC는 분명 존재한다.

내가 게시글 필터링 담당자였다면

업자나 양식을 어기는 글이 모니터링되면, 삭제가 아닌 숨김처리로 우선 조치를 취하고. 후속 검증을 통해 풀어주거나 어떤 사유때문에 삭제 되었다는 내용을 안내할 것이다.

근데, 설마 기업인 중고나라가 이 정도 후속 안내도 안 할것 같진 않은데. 카페 메일함 어디에 삭제 안내 메일이 와 있을 수도 있겠네. 다만 네이버 카페 안에 셋방살이 하는 서비스 특성상 사용자에게 원하는 대로 메시지를 띄울 수 조차 없는 한계가 있겠지. 결과적으로 나랑 카나다 친구에게 중고나라는 ‘게시글 삭제하고 이유도 안 알려주는 불친절한 서비스’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중고나라의 몰락과 당근마켓의 부상은. 결국 모바일 대응에서 갈렸다고 봐야겠지.

중고나라가 대략 1천억 언저리에서 사모펀드에 팔린 걸로 기억하는데. 인터넷 카페에서 시작해 지금은 몇 조 단위 기업가치 평가를 받는 무신사가 있는 반면, 하향세를 반등시킬 딱히 대안이 안 떠오르는 중고나라도 있고.

아니, 오히려 별처럼 많은 인터넷 카페 중 1천억 밸류까지 만들어 낸게 더 대단하다고 봐야하는게 옳지 않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또 하나의 인터넷 기업 흥망성쇠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다.

며칠 후 추가) 그럼에도 장점 & 역시나 아쉬운 점

장점: 전국 대상, 오래된 업력으로 인한 넓고 광대한 구매자 풀
당근마켓에 34인치 와이드 모니터를 올렸는데, 며칠 지나도 아무도 안 사가기에 중고나라에 올렸더만. 체감상 거의 글 등록버튼 누르고 10초쯤 후에 바로 연락이 세개가 오더라. 당근이랑 같은 가격에 올렸는데, 구매자 풀의 크기가 완전 다르다는 걸 느꼈다. 특히 남성들이 많이 쓰는 전자기기 영역은 확실히 아직 중고나라 구매자 풀이 넓더라.

아쉬운 점: 상호 원만한 거래 관계를 만드는 넛지 역할을 할 장치의 부재
중고나라만 쓸 때는 몰랐는데. 당근마켓의 거래온도라는, 거래 후 받는 피드백 점수가 은근 넛지 역할을 제대로 해 낸다. 중고나라 구매자에게 나름 친절히 대하고 돌아서는데, ‘아…이거 중고나라였지…당근마켓이면 저 분이 거래온도 좋게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네…’라는 생각을 내가 하고 있더라고.

당근마켓이 리워드로 실제 돈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판매자-구매자 상호 윈윈하도록 자율적인 거버넌스를 만든 거랄까. 이미 답을 알고서 ‘이 기능 중요하다’는 걸 판단하는 건 쉽지만, 도입전 검토 할 때는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했을까.

이미 중고나라 모바일 앱에서는 이런 장치가 도입되어 있을지는 모르나, 지금의 나와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고나라 앱을 접속해 그런 기능을 접해볼 필요성도 못 느낀다는 것.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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