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 기행] 2. 책으로 만나 본 캐나다_한번쯤 꿈꾸는 천국 캐나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 말 그대로 더 많이 보고 오기 위해 캐나다 여행 전 책으로 ‘미리 옅보는’ 중이다. 주말에 도서관에서 ‘캐나다’로 검색해 나오는 십여권 조금 넘는 책들을 뒤적여 보는 중. 

어느 나라도 체제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언어, 즉 영어였다. 캐나다의 모국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바로 그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민자 본인 스스로가 원천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 캐나다가 문제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영어로 자신의 의사를 100% 표현할 수 있는 이민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삶의 질 세계 1위!’

캐나다에 가기만 하면 나도 모르게 삶의 질이 1위로 올라갈 줄로만 알았던 때가 있었다. 물질적인 풍요야 개인의 재산 상태에 따른 것이지만 적어도 정신적인 만족감이야 가능할 줄 알았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삶의 질 1위’라는 것은 적어도 이민자의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배우고 자연스럽게 성장한 사람들, 어떠한 곳에 가더라도 자신의 철학과 능력을 100% 발휘하는데 한 치의 문제도 없는 그런 사람들의 기준에서 캐나다는 삶의 질이 1위라는 것이다.

한극의 어느 회사에서 경력직을 뽑는데 기본적인 언어도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뽑을 수 있을까? 기본적인 자신의 권리조차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고급 관리직으로 뽑을 수가 있을까?

진정으로 삶의 질을 높이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적어도 우리의 한계를 솔직히 알고 처음부터 다시 출발해야 함이 옳은 자세일 것이다.

: 69~70쪽

긴 내용이지만 인상 깊은 구절이라 모두 옮겨 적었다. 

위 내용 앞부분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국 이민자가 카드회사의 결제 오류 건이 몇 달씩 지연되자 이게 무슨 망할 선진국이냐고 투덜댔다는 내용이다. 글쓴이는 오류 처리가 지연되는 게 캐나다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차분히 카드회사에 설명하지 못한데서 벌어졌다는 입장이다.

인간 사회, 특히 현대 사회에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 좀 격하게 표현하면, 현지인 입장에선 강아지나 말 안 통하는 이민자나 소통 면에선 별 차이가 없다. 강아지도 상대 기분을 읽고 자기 기분을 표현할 줄 안다. 언어가 미숙하다면 좋다, 싫다, 반갑다, 먹어라 정도의 1차원적 소통 밖에 할 수 없다.

언어가 안 되는 이민자가 고도의 소통이 필요없는 육체노동에 종사할 수 밖에 없는 건 필연. 아예 돈을 싸들고 가는 은퇴 이민이라면 관계없다. 내가 주인이 되고 현지인이 강아지가 되는 거라면.(비유가 좀 개 같네…) 어느쪽이든 아쉬운 쪽이 그 쪽 언어와 룰을 배워야겠지.

어쩌면 이민 준비에서 언어 공부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일지도 모른다.

이 나라도 물론 속물들이 존재할 것이다. 벼락부자가 되어 깊이는 없고 고급 메이커만 선호하는 부류들 말이다……중략…… 캐나다에서는 장사 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사회가 투명하고 일한만큼 결과가 있기 때문에 무척 고되고 여유가 없다. 그러니 이곳에서 돈을 번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쓰던 것을 잘 버리지 않고 새 것을 잘 안 사기 때문에 소비, 구매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각각의 산업들이 번창하지 못하고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갑갑함을 느낀다.

알면 알수록 캐나다와 미국은 다른 사회다. ‘더 높고 더 빠르고 더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첨병 미국과 반 자본주의 놈팽이 비슷한 캐나다가 마주하고 있다니. 어찌보면 자본주의 때문에 빙하가 녹는 속도를 줄이는 완충지대 개념으로 캐나다가 존재있는 건 아닐까.


캐나다처럼 아나바다가 사회 전반에 밴 곳이라면 한국처럼 극적인 자본주의 발전은 어려울 듯. 한국처럼 죽자사자 안 하고도 잘 사는 걸 보면 풍부한 지하자원 덕이 크지 않나 싶다. 이를테면 금수저 국가인 셈. 역으로 한국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고 사람이 자원’인 만큼 사람을 쥐어짜는 ‘스파르따’ 자본주의 형태로 발전해 왔고.


지난 주에 체크(개인수표)를 다 썼다……중략……처음에는 체크 한 장 한 장에 일일이 수취인 기록, 금액 기록, 사인 등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랐다……중략…… 하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캐나다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체크를 100%사용한다.


이 책이 2004년에 쓰여졌으니 지금은 캐나다도 체크카드 같은 플라스틱 카드를 사용하지 않을까 한다. 위의 일화는 캐나다의 ‘신용사회’를 보여주는 예 같은데, 한국에서도 한때 신용장을 국가에서 장려했으나 정착이 안 됐다고 한다. 


뻔하지, 마그네틱으로 된 긁는 카드보다 IC칩이 내장 돼 꽂았다 빼는 카드의 승인 속도가 조금 느린 것조차 한국 소비자들은 답답해하는걸. 어느 세월에 종이 수표에 사인하고 앉아 있을까. 한국 문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내 예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작은 가게에서는 10만원짜리 수표를 안 받기도 했고, 받을 때면 주는 사람 이름과 주민번호를 뒷면에 받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같으면 개인정보보호로 난리날 일이지만.



인감증명만 해도 그렇다. 이곳은 그런 것이 없을 뿐더러 본인 사인만으로도 충분히 업무가 해결된다. 한국과는 달리 은행의 체크 확인이 아니고는 사인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이 없다. 그러니 투명 비닐에 인감 도장을 찍어 그것을 인감증명서 위에 덧씌워 도장 선을 일일이 확인해야만 일이 해결되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사회의 신뢰비용.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믿을 수 있다면 공인인증서니 계약서니 이런게 다 필요없다. 다만 한국도 점차 신뢰비용을 낮추는 쪽으로 가고는 있지 않나 싶다. 


한 예로, 요즘 공공장소 화장실에는 거의 당연히 휴지가 비치되어 있는데, 생각해 보면 놀랍다. 나 국민학교 시절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 그거 다 떼 가 버릴테니.



2년 전에 이민 온 어떤 분이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온 지 이틀 만에 벤츠를 샀다……그 후 그는 집 앞에 차를 주차해 놓고 혹시 누군가 훔쳐가지나 않을까, 손을 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늘 불안했다……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도무지 벤츠를 샀다는 우쭐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무도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저 일화에 나오는 분은 결국 기름값 많이 든다며 GM에서 나오는 평범한 차로 바꿨단다. 예상컨데 캐나다는 패션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울 듯. 남의 눈을 신경 안 쓰니 치장하는 산업이 발전하기 어렵지 않을까. 물론 자기만족을 위한 패션도 있겠지만, 오롯이 자기만족을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그게 하나의 산업으로 덩치가 커지긴 어려울테니.


한국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차량 구입시 중요 요소로 꼽히는 ‘하차감’이란 게 있다. ‘승차감’은 타고 있을때의 편안함이라면, 하차감은 차에서 내릴때 있어 보이는 정도라는 것. ‘있어 보이는 것(실제 있는 것과는 별개로)’은 한국에서 몹시 중요하다.


독일 럭셔리 자동차의 기계적 완성도가 높은 것은 누구나 인정하나, 동급 대중 브랜드의 두배 혹은 서너배 가격이 합리적일까? 이걸 합리화시켜주는 요소가 하차감이다. 실제로 한국의 인구 대비 벤츠 S클래스 판매비율이 꽤 높다고 한다.


물론, 올해 세법 개정 전까지는 법인이 경비처리로 비싼 외제차 구매, 운영 비용을 처리할 수 있었던 법의 허점도 컸지만.(이런거 보면 한국 시스템이 아직 한참 멀었다)



캐나다에서는 자동차나 볼펜이나 똑같다. 종이에 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볼펜을 사는 것이지 장식용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잃어버려 새로 사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중간에 싫증이 난다고 해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이게 캐나다의 일반 정서라면 중고차 시장도 활성화되기 어려울 듯 하다. 한국의 중고차 거래액은 신차판매액의 2배 이상. 한국에선 자차를 팔고 신차를 사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싫증나서’다. 


가족이 늘어서, 장거리 운행에 적합한 차가 필요해서 등등 차량 변경에 합리적인 이유를 마련하려고 하나, 자동차 커뮤니티 눈팅을 하다보면 알 수 있다. 옷장에 옷은 많지만 입을 옷은 없다며 SS, FW 신상을 보는 것마냥 신상 자동차에 끌리는 우리(너와 나) 모습을.


이러니 한국 중고차 시장엔 ‘신차급 중고’도 넘쳐난다. 한국은 차량 소비 싸이클 면에서는 글로벌 테스트베드이자 얼리어답터 시장인 셈이다.



이곳 아파트는 한 번 지으면 끝이다. 재개발이라는 것이 없어 보통 40~60년 된 아파트가 태반이다. 대신 유지 보수를 계속하는데 렌트비가 아주 저렴하다.


한국에서 40년 된 아파트는 대게 누군가의 뽐뿌질인지 자발적 봉기인지 뭔지로 조합을 만들고 재개발을 시도하더라. 재개발 진행 초입, 그러니까 안전진단 검사에서 낙제를 받으면 기쁘다고 플랑을 걸어 놓는다. 


즉, ‘이 아파트는 사람이 살기엔 너무 위험하다’라는 판정을 받고 축하 현수막을 거는 것. 이 안전도 검사를 통과해야(사실은 떨어져야) 재개발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는 이럴때 쓸 수 있는 걸까.


한국에선 집이 거주 수단이면서 강력한 재산 증식 수단이라 벌어지는 괴이한 현상이긴 한데, 이와 별개로 건축 기술이나 기후/환경 면에서도 캐나다와 차이가 나는 건지 궁금하다. 즉, 캐나다는 40년 넘어도 기본 골조가 튼튼해 내부 보수만 잘 하면 되는건지, 아니면 기후가 온난(할 것 같진 않은데)해 오랫동안 골조가 버텨주는 건지.



11학년(한국의 고등학교 2학년)의 과제물이란 것이 한국 초등학생의 공작 만들기 수준이란 걸 보면 복자이 터질 노릇이다…중략…이곳 캐나다에서는 고등학교까지는 무상으로 공교육을 받는다. 이곳의 특징이 모든 것을 ‘순리대로, 무리하지 않게’인 만큼 대학 진학률도 약 28% 정도에 머무른다. 28%의 의미는 순수하게 대학가고 싶은 사람의 수치로 보면 될 것이다.


드디어 나왔다! 교육문제.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자식교육때문에 이민을 택했겠지? 근데 그 자식교육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걸까? 단적으로 말해 ‘선진국 교육’의 수혜를 받게 하겠다는 걸텐데, 내겐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는 영역.


일전에 본 한국 자료에서, 82년생의 대학 졸업자가 80%를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스무살에 입학한 사람 + 뒤늦게 학위 딴 사람 포함) 한국 교육은, 개인 측면에서 보면 학사 학위 없이도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게 해줘야 하고(그래서 대학입학률을 기계적으로라도 떨어뜨려야 할 듯), 사회 측면에선 평생 교육을 통해 국민들의 교육 수준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야 할 것.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AI 때문에 더욱 절실해 지리라 본다. 왠지 석탄캐고 나물캐고 나무베는 일로 수백년 잘 먹고 잘 살아온 것 같은 캐나다는 AI 물결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



책에 대한 총평

한국 출신의 캐나다 이민자가 쓴 수필이라 잘 읽힌다. 개인 일상에서 얻은 소재를 글로 엮다보니 쉽게 공감이 가는 반면 정교함이 떨어지는 한계는 있을 것. 게다가 2004년 출간이라 이미 15년 가까이 지난 시절 이야기다. 아무리 정적인 나라라해도 10년이면 꽤 많은 부분들이 변하지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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