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청년, 씨를 뚫지 못하다.

복숭아 비유 겉은 손톱이 들어갈 만큼 무른데… 일정 깊이에 도달하면 칼도 튕겨낼 만큼 단단한 씨앗이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그 씨앗이 외부 칩임을 허용하지도 않지만 내부에서 뻗어나가는 발아도 허용치 않는다는 것 줄탁동시啐啄同機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팍에서 함께 쪼아야 한다는 이야기 내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서도 마찬가지. 나도 두드리고 당신도 두드려야 한다. 하지만, 당신이 … Read more

블라우스, 비, 정맥

물가에서 돌아온 밤에 램프 밑에 앉아서 당신의 정맥에 관하여 적는다. 그해 여름에 비가 많이 내렸고 빗속에서 나무와 짐승들이 비린내를 풍겼다. 비에 젖어서, 산 것들의 몸 냄새가 몸 밖으로 번져 나오던 그 여름에 당신의 소매 없는 블라우스 아래로 당신의 흰 팔이 드러났고 푸른 정맥 한 줄기가 살갗 위를 흐르고 있었다. 당신의 정맥에서는 새벽안개의 냄새가 날 듯했고 … Read more

클립보드엔 당신

오늘 워드를 치다 오타가 났다 우연찮게 쓰여진 네 이름 백 스페이스 몇 번으로 손쉽게 지운다 맙소사, 아직도 넌 클립보드에…… – 2010년 8월 어느 날 * 클립보드 : 컴퓨터에서 임시 저장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확보된 메모리 영역, 재부팅 하거나 다른 내용으로 대체하기 전까진 사라지지 않음.

‘일단, 아무나’ 그리고 ‘연애’

한 친구가 내게 요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참~ 오빠는 고집쟁이예요, 그 나이까지 연애를 못 했으면 남들 같으면 그냥, 일단, 아무나 만나서 연애 할 텐데”  맞는 말인가도 싶습니다. 연애 상대가 자주 바뀌는 친구들은 새로운 만남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요. 제 식대로 표현하자면 최대 정지 마찰력이 낮고 마찰계수도 낮은 셈이지요. 연애라는 것이 반드시 죽고 못사는 두 명이 … Read more

당신은 아직 그 구두를 신고 다니나요.

처음 봤을 때 당신이 신고 있던 구두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반년쯤 후 서점에서 당신이랑 똑같은 구두를 신은 여자를 보고 놀랐죠. 그 후로 숱하게 많은 여자들의 발걸음과 그녀들 발에 걸린 구두를 봐 왔는데 왜 다른 구두는 떠오르지 않나요. 당신은 아직 그 구두를 신고 다닐까요. 예쁜 구두는 주인을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는… 구두 회사의 마케팅일지도 모르는 그 말이 … Read more

동시에 한 사람을 좋아하던 동지가 있습니까.

학교에서 어쩌다 마주치면, 같은 여성에 대한 호칭을 나는 “아끼는 후배 여학생”으로, 윤ㅇ일은 “존경하는 선배 누나”로 애써 감정을 숨겨가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것이 25년이나 지난 지금도 참 계면쩍다. 한번은 내가 그 여학생이 자기 집 옥상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고 힘들었다더라는 말을 전했더니, 윤ㅇ일이 “옥상이 있는 집이라면, 찢어지게 가난한 집은 아니겠군요” 라고 좋아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 여학생이 고등학생 … Read more

‘인연’의 확률적 정의

소개팅에 예쁜 애가 나올 확률  × 그 애가 나를 좋아할 확률  = 이 세상 아무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힐확률(요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대사) = 인연 맙…소…사…

한번이라도 나 자신과 직면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있었던 첫번째 소개팅. 그로부터 3년 후 신림역 근처 샤브샤브 집에서 만나기까지… 난 한 번이라도 내 본질적 모습과 직면한 적이 있었던가.   마치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마냥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 수록 맞춰지는 나의 조각 내 꽉 막한 자아는 상대에게 조금의 틈도 보여주지 않았던 걸까   용산 참사를 보고는 분개하고 눈물 흘리지만 시험에 낙방한 친구를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