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과 콘텐츠
읽고 보고 듣는 모든 콘텐츠에 대한 감상
내 키가 더 컸으면 좋겠다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먹고 싶다 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 – 문정희 ‘키 큰 남자를 … 더 읽기
이것봐라! 하느님도 외롭다잖아!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 더 읽기
꼬깃꼬깃 접어 두었던, 부치지도 버리지도 못한 편지
말하고 나면 그만 속이 텅 비어버릴까봐 나 혼자만의 특수성이 보편성이 될까봐서 숭고하고 영원할 것이 순간적인 단맛으로 전락해 버릴까봐서 거리마다 술집마다 아우성치는 삼사류로 오염될까봐서 ‘사랑한다’ 참 뜨거운 이 한마디를 입에 담지 않는 거다 참고 참아서 씨앗으로 영글어 저 돌의 심장 부도 속에 고이 모셔져서 뜨거운 말씀의 사리가 되어라고 말하지 않은 말 – 유안진 ——————————- ‘혼자만의 특수성’ 이니 … 더 읽기
퍼펙트 맨이 아니어도 살아갈 만하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대의 빛나는 눈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대의 따스한 가슴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지와 잎, 뿌리까지 모여서 살아 있는 ‘나무’라는 말이 생깁니다. 그대 뒤에 서 있는 우울한 그림자, 쓸쓸한 고통까지 모두 보았기에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전부로 와 닿았습니다. 나는 그대의 아름다움만 사랑하진 않습니다. 그대가 완벽하게 베풀기만 했다면 … 더 읽기
‘빗장’ 떠버린 사랑에 아직은 쓰라릴 친구에게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서럽기만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논둑길을 마구 달려보지만 내달아도 내달아도 속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루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 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어요 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 시방 당신 생각으로 먼 산이 다가오며 어지럽습니다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해 열린 마음을 닫아보려고 찬바람 … 더 읽기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나 홀로 걷는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지기 전에 그대가 와서 반짝이는 이슬을 텁니다 나는 캄캄하게 젖고 내 옷깃은 자꾸 젖어 그대를 돌아봅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마르기 전에도 숲에는 새들이 날고 바람이 일어 그대를 향해 감추어 두었던 길 하나를 그대에게 들킵니다 그대에게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내 … 더 읽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고을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서 … 더 읽기
공대생의 감성으로 쓴 자작시 [당신에게서 Uninstall]
당신을 기다리며 집 앞에서 두근대며 서 있지만 집에서 걸어 나온 당신의 첫 눈빛은 즐겁지 않았어요 함께 있어도 내 이야기보다 개인휴대 통신장비와의 교신이 우선이고요 나는 당신이란 운영체제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 중 우선 순위가 최하위인 기분이 들었어요 여유 자원이 넉넉하면 그때서야 관심을 기울이는 다른 프로그램에는 그토록 친절하고 상냥한 당신, 그런 당신이라서 더욱 쓰리고 시립니다 이제 당신이 베풀어 주는 … 더 읽기
나는 사랑합니까 대답해 주십시요
느닷없이, 미안합니다 뜻이 있는데 길이 있어서 그럽니다 맘대로 하라시지만 어렵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시지만 길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까 갑니까 가는 게 아닙니까 좋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나는 사랑합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그 대답이 접니다 그래도 우리가 고개 숙이는 만큼의 이 땅의 인력(引力)을 운명으로 사랑합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 ‘그냥’ 정현종 내가 좋아하는 … 더 읽기